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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Dec 07. 2023

고추잠자리

자비심 만이 용서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다.  

 그늘 진 곳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노리개로 살다가 목숨을 던진 여배우의 저항이나, 혼자서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작업을 하다가 끼어 사망한 19살 청년 가방의 컵라면, 장난 삼아 쓰는 SNS 댓글이 상처가 되어 소중한 목숨을 끊은 운동선수의 유서 등은 우리 사회의 자비 없음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신문을 읽다가, 할아버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만물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아쉬운 가을이다.


 초등학교 3, 4학년, 철 모르던 때였다. 가을이 영글기 시작하면 높고 파란 하늘에 빨간 잠자리가 유유히 날아다닌다. 작은 키로 올려보면 키 큰 감나무의 빨간 감처럼 그저 쳐다볼 뿐이었다. 구름이 끼고 습도가 높아 비라도 올 것 같은 날에는, 잠자리가 낮게 날아다녔다. 잠자리의 비행술은 놀라웠다. 수직으로 오르기도 하고, 빠른 속도로 옆으로 이동하거나 공중에 멈춘 채로 있는 정지 비행은 어린 마음을 훔쳤다. 고추잠자리를 보고 헬리콥터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몸이 푸른 밀잠자리, 초록빛을 띠는 왕잠자리를 비롯 실잠자리 등등 종류도 많다. 가끔은 에스(S) 자로 붙은 두 마리의 잠자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는 날도 있었다. 어른이 되어 알게 되었지만, 잠자리는 공중이 가장 안전한 곳으로 알고 있기에 교미도 공중에서 한다고 한다. 잠자리가 곤충 세계에서는 말벌 다음의 상위 포식자라고 알려져 있다. 발가벗고 멱을 감던 어린 시절, 잠자리 잡으며 놀다 많이 물려 봐서 잠자리 턱이 얼마나 강한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변변한 잠자리채도 없던 시절인지라, 싸리비를 휘둘러 잠자리를 잡곤 했었다. 어쩌다가 ‘소 뒷걸음질에 개구리 밟듯’ 빨간 고추잠자리를 한 마리 잡기라도 하면 얼마나 기뻤던지 그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었다. 고추잠자리처럼 빨개진 얼굴로 할머니께 달려가 자랑하곤 했었다. 


 비가 내렸던 어느 날이었다. 뒷동산에 올라가니, 그토록 잡고 싶었던 고추잠자리가 낮은 키의 강아지풀에 쪼르륵 쪼르륵 매달려 쉬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뒤로 멀리 무지개가 아름답게 걸려 있었다. 잠자리들은 날개가 젖어 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달려가 싸리비를 들고 와서 신나게 잡아 곤충 채집통에 가득 채웠다. 


 이튿날 아침 눈 뜨자마자, 윗방에 고이고이 모셔 두었던 잠자리를 보러 갔다. 아뿔싸 채집통 안 잠자리들은 모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온종일 우울했다. 예쁜 잠자리들을 ‘내가 모두 죽였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하고 가여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날 저녁, 시무룩해 있는 나를 할아버지께서 부르셨다.


 할아버지는 조용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옛날 어느 산골에 부자 할아버지가 살았단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여 부자가 되었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못 본 체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못했던 것이 몹시 후회스러웠다. ‘당신도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어’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말했던 일도 괴로웠단다. 그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지. 어느 날 꿈에, 명부전에 계시는 지장보살 님이 오셔서 ‘참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칭찬을 해 주셨다. ‘보살님 제가 극락에 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으나 ‘아니다’ 하고 사라지셨다. 더욱 열심히 가난한 이웃을 돕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살피곤 하였다. 꿈속의 보살님은 계속 ‘아니다’라고 하시며 극락에 보내 주실 생각을 아니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타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세차게 내려 주막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가고 있었다. 길의 움푹 팬 웅덩이에 작은 송사리들이 갇혀 팔딱거리고 있었다. 노인은 하얀 모시 두루마기 소맷자락으로 송사리들을 건져 바로 옆 냇물에 놓아주었다. 그날 밤, 지장보살님이 오셔서 ‘오늘 참 좋은 일을 하였구나. 극락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셨단다. 생명을 극진히 사랑하는 일보다 더 자비로운 일은 없다는 얘기이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는 것은, 토끼의 생명으로 호랑이의 생명을 구원하기에 살생이라 하지 않는다. 호랑이는 배가 부르면 토끼를 잡지 않는다. 장난으로 토끼를 죽이지도 않는다. 앞으로는 미물이라 하더라도 장난으로 죽이는 일은 하지 말아라. 자비심이란 만물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다. 자비심이 있는 사람만이 용서받을 수 있고, 극락에 갈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마음에 남아있는 할아버님 말씀이다. 할아버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아들 손자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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