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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Jan 22. 2024

동행

자연은 함께 살아가야 할 동행

 뉴질랜드 북섬 동남쪽 미란다 갯벌에서 큰 뒷부리도요새 모녀가 겨울을 나고 있다. 엄마 ‘휴리’는 철 덜 든 딸 ‘요’가 걱정이다. 삼월 말이면 한국의 금강하구 수라 갯벌까지 10,000km를 가야 할 텐데 먹이 사냥을 부지런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에 올 때도 지방 부족으로 죽을 고생을 했으면서도 정신을 못 차린다. 

“이것 좀 먹어. 많이 먹어야 해.”

“지금은 배가 부르단 말이야.”

“너, 그렇게 먹지 않으면 힘이 모자라 태평양에 떨어져 죽어. 얘야! 알래스카에서 올 때는 바람이 너를 밀어주었지만, 이번에는 바람이 너를 막는단 말이야.”

“그래도 거리가 훨씬 가깝지 않아?”

“도착까지는 땅을 밟을 수가 없어. 물도 도시락도 없고. 일주일 이상 날개 치기를 해야 해. 위, 콩팥, 간, 창자, 다리 근육 등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자리에 지방을 채워야 돼.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지방을 태워 먹으며 버텨야 하니까.” 


 며칠 후 새벽 두 시 출발했다. 목적지는 먹이가 풍부하고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하기 좋은 알래스카 서부 해안. 거리가 18,000km나 되며, 바람을 맞으며 날아야 하고, 매나 독수리처럼 활공을 할 수 없는 도요새들에게는 너무 멀고 힘든 여정이다. 그래서 두 달간의 휴식을 위한 중간지점인 한국 서해안으로 간다. 일제히 활갯짓하며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듯했다. 2,000여 도요새의 4,000여 날개 치는 소리는 합창단 노랫소리요, 응원하는 함성이었다. 계속 고도를 높였다. 서울 롯데타워의 8배 높이인 4000m까지 오른 후에야 한 방향으로 날았다. 


 “엄마, 엄마. 저 아래로 보이는 새하얀 솜사탕 같은 것 구름 맞아? 너무 예쁘다.”

“한눈팔지 말고 말도 많이 하지 마. 힘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한다고. 엄마 뒤를 바짝 붙어 따라와. 그럼, 조금은 덜 힘들어.”

“알았어, 엄마나 조심하라구.”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별을 이정표 삼아 벌써 이틀을 날았다. 도요새는 북극의 자기장을 식별할 수 있는 특수한 재능을 가졌다. 새파랗게 펼쳐진 바다 위로 초록의 작은 섬들이 아름답다. 삼 일째에 피지섬과 솔로몬제도를 지나고, 파푸아 뉴기니가 보이면 절반쯤 온 거다. 벌써 4일을 날아왔다. 캄캄한 밤하늘을 날고 있는데, 앞쪽의 이웃 아줌마가 소리를 질렀다. 큰 바위 옆 할아버지가 날개를 다쳐 떨어졌다는 뉴스다. 도요새 군단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여러 마리 도요새가 추락했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모녀는 더욱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갔다. 


 팔 일째 새벽, 전남 신안군 압해도 갯벌에 도착했다. 다행히 간조 시간이다. 갯벌에서 칠게, 갯지렁이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허겁지겁 잡아먹었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갈퀴가 없어 헤엄을 못 치고, 다리가 짧아 깊은 물에는 서 있을 수도 없는 도요새는 물이 들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가 휴식을 취한다. 따뜻한 봄볕과 바람이 좋다. 힘들고 험난했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그동안 도와주신 신령님과, 잘 견뎌준 요와 자신의 날개에 감사했다. 저녁노을이 갯벌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엄마! 수고 많이 했어. 앞에서 날 데리고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야, 다른 도요새들이 많이 있었잖니? 그 덕분에 괜찮았어. 요야! 우리는 이레 동안 생명을 건 날갯짓으로 여기까지 왔잖니? 만약 너와 나 둘 뿐이라면, 일만 km를 날아올 수 있었겠니? 그것은 이천 마리 도요새 가족이 동행했기에 가능했던 거야.”

“맞아요, 옆집 아저씨들이 ‘힘내라, 잘하고 있다.’라며 응원도 해 주셨어요.”


 그들은 하루를 더 쉬고 출발했다. 높은 하늘에서 ‘도요새의 시선’으로 바라본 신안 갯벌은 신비와 경이로움이었다. 점점이 박힌 크고 작은 섬들과 광활한 갯벌 사이로 실핏줄 같은 바닷물이 흐르고 있다. 수많은 물줄기가 만들어 낸 자그마한 조각 땅 하나하나가 생명처럼 숨을 쉬며 반짝이고 있다. 수천수만의 갯벌 가족이 우주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참으로 아름답다.


 어느덧 금강하구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도둑게, 큰 구슬우렁이, 홍게, 농게 등 150여 종의 갯벌 식솔들이 살고 있을 터인데, 말라버린 갯벌에는 죽어버린 조개껍데기만 즐비하다. 이름 모를 새들의 주검이 펄에 묻힌 채 깃털만 묘비 되어 바람에 나부낀다. 33km의 방조제가 모녀를 노려보고 있다. 일행은 애당초의 목적지 수라에 내렸다. 갯벌 수라도 이제 막 바닷물은 들어왔으나 생명체는 거의 없고, 칠면초만 무성하다. 지금도 미군 비행장이 있는데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반대>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흉측하고 무섭게 조각된 장승들이 서 있다. 휴리는 낙망한 나머지 바닷물 소리에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엄마, 서천 갯벌로 가면 되잖아. 왜 울어. 울지 마!”

“음 그래 안 울게. 근데 너무 슬프잖아.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행복하게 살던 아름다운 수라가 이 지경이 돼 버리다니……. 그래서 너무 슬프단다.”

“사람들은 왜 갯벌을 막아 죄 없는 생명을 죽이는 거야?”

“이기심 때문이지. 이웃, 동행의 의미를 모르는 거지. 몸무게가 반으로 줄 만큼 목숨 걸고 찾아오는 곳인데. 해마다 연약한 깃털만으로 이레동안 밤낮없이 날아오는 곳을 이렇게 만들다니. 도요새 가족은 모두 죽고 말 거야. 다른 갯벌이 없다면.”

“엄마, 사람들은 이웃이 없나?”

“요야! 갯벌에는 사람, 도요새, 칠게 등 많은 생물이 살고 있지? 그런데 사람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생물의 집과 직장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하나의 생명이 죽으면 번식도 할 수 없게 되지. 그렇게 되면 태어나지 못한 생명이 수천일까, 수만일까? 인간들의 우둔함으로 수억의 생명들이 말라 사라지게 돼. 같이 사는 생명이 멸종되면 자신들도 죽는다는 것조차 모르면서 자칭 만물의 영장이래! 가관이지?”

“만물의 영장? 히히 참 가소롭구먼. 그럼 우리는 신이겠네. 사 오천 m 상공에서 ‘도요새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일 년에 3만 km를 나침반 없이 비행하니 말이야.”

“요야. 너의 그런 생각이 바로 인간들의 오만과 같은 거야. 인간들은 자기들이 영장이라 자만하며 다른 생명들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있는 거야. 세상의 모든 생명, 자연은 함께 살아가야 할 동행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잊으면, 결국 모두 죽게 되지. 아직 잘 살아있는 알래스카와 뉴질랜드에 감사하고 힘내자. 가자, 모두 떠난다.”

“그래, 엄마! 오만하지 않도록 조심할게.”


 휴리와 요도 이웃들처럼 다시 작은 날개를 펴고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 수라 갯벌을 다시는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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