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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Dec 17. 2023

고전 읽기

고전은 용기와 지혜를 담고 있는 백자다완이다

 고전은 백자다완(白磁茶碗)이다. 범이요 죽(竹)이요 신선이 독주암으로 오르는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이다. 찻물을 길러 다니는 오솔길은, 세속의 업을 모두 벗어 놓아 청빈해서 가벼운 자만이 다닐 수 있는 참 행복으로 가는 여정이다. 호랑이 앞에서 주눅 들고 위축되면 잡아 먹히지만, 호랑이를 압도하여 등에 올라타면 무서울 게 없는 숲 속의 제왕이 되리라. 살아있는 동안 푸른색을 바꾸지 않으나, 한 칼에 밝고 하얀 속살을 내 보이는 대나무 같은 명쾌하고 밝은 배움을 얻으리라. 


 고전은 어려서 읽기 시작하면 좋지만, 나이 들어 칠순이 넘어 읽으면 더욱 좋다. 교과서에서 또는 위인전에서나 만날 수 있는 저자들의 면면을 살필 수 있어 그러하다. 어려서 읽으면 앞으로의 삶에 주춧돌을 얻는 것이며, 나이 들어 읽으면 평생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깨우침이 더욱 분명해질 터이기 때문이다.  


 고전의 색깔은 오방색으로 칠한 단청의 호화로움도 아니며, 비를 맞아 썩어가는 쇠락한 폐가의 어두운 색깔도 아니다. 옛날 할머니께서 아침저녁으로 엎드려 닦으시던 마루의 반짝거림으로, 해가 좋은 날에는 눈 부시지 않으며 흐린 날에도 빛을 잃지 않는 오래된 마루의 느낌이다.


 이른 봄에 할머니께서 해 주시던 쓴나물 같은 맛이다. 첫 입맛에는 진저리를 칠 만큼 쓰지만 입에 넣고 오래 씹으면 단맛이 우러난다. 쓴맛은 단맛으로, 단맛은 쓴맛으로 통하는 쓴나물 맛이다. 고전을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청량함과 감미로움이다. 


 일본 가고시마현 심수관 가마에서 백자다완을 만났다. 백자이지만 투박했고, 두 손바닥으로 품으면 쏙 안길 만큼의 크기였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형상이 대칭을 이루고 있어 한눈에 걸작으로 보였다. 고전 읽기는 참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기에 실수가 있어서도 아니 되고, 파격이나 놀이가 있어도 아니 된다. 오직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완벽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여백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때 보았던 그 백자 다완처럼. 


 고전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담고 있는 백자다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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