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야 Jan 15. 2022

오류와 불확실성에 투자하라

『소로스 투자 특강』서평 1

 소로스의 이론은 너무나 강력해서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야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귀성 이론에 몰두한 나머지 열린 사회 개념이나 대리인 문제 같은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소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 저의 대부분의 관심사는 '재귀성 이론'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주제를 다룰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나서서 이 개념들을 훌륭하게 다뤄 주길 기대합니다. 


 지난 몇 년간 시장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을 접했지만 그만큼 명확하게 시장을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떤 이론은 시장의 부분적인 것만을 설명해줄 뿐입니다. 또 다른 이론은 부실한 토대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무리한 가정을 계속 끌고 옵니다. 결국 이것은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진 이론이 된 것 같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로스의 개념의 틀은 시장의 구조를 단순하고 우아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생각은 현실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의 가정이 추가될 뿐입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왜곡된 관점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실제보다 한 발 더 멀리 뻗은 현실은 우리의 불완전한 이해를 더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현실의 객관적인 측면이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왜곡될 수 있었을까요? 


 우선 앞서 말한 '객관적 측면'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서 모두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물리학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한 다음에도 양자 입자의 움직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윈의 기념비적인 저서『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후에도 진화는 멈추지 않았고 자연선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나 시장근본주의, 재귀성 이론 같은 사회 이론들은 관련 주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사람의 생각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기능입니다. 이것을 인지 기능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하나는 상황을 자신에게 이롭게 바꾸는 기능입니다. 이것은 참여 기능 또는 조작 기능이라고 부릅니다. 두 기능이 생각과 현실을 연결하는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인지 기능에서는 현실이 사람의 관점을 결정합니다. 세상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셈입니다. 반면에 조작 기능에서는 사람이 세상에 영향을 줍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의도가 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두 기능이 동시에 작용하면 서로 간섭하게 됩니다. 어떻게요? 종속변수의 값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독립변수의 각 기능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기능의 독립변수는 다른 기능의 종속변수가 되고 두 기능 모두 진정한 독립변수가 되지 못합니다. 


 자연현상은 사건이 사람의 관점과는 무관하게 전개됩니다. 즉 사람의 생각은 자연현상에 대해서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인지 기능만 발휘합니다. 따라서 외부 관찰자는 자연현상에서 나타나는 기준으로 관찰자의 이론이 옳은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관찰자는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이 지식을 이용하면 자연을 효과적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연현상에서는 인지 기능과 조작 기능이 자연스럽게 구분됩니다. 이런 구분 덕분에 두 기능은 자신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합니다. 


 반면에 어떤 상황에 생각하는 사람이 포함되면 그 상황은 자연현상과 구조적으로 달라집니다. 사람의 생각은 인간사에 대해서는 주관적 요소가 되어 인지 기능과 조작 기능을 모두 담당합니다. 두 기능은 서로 간섭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간섭이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운전이나 페인트칠 같은 일상생활에서는 두 기능이 실은 서로 보완해줍니다. 그러나 일단 간섭이 일어나면, 자연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불확실성 요소가 등장합니다. 불확실성은 인지 기능과 조작 기능에 모두 나타납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이런 행동의 결과는 기대에서 벗어납니다. 이것이 인간사의 핵심적인 특징입니다. 


 이쯤에서 인간사에 불확실성을 일으키는 요소가 재귀성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두고자 합니다. 물론 재귀성은 사람의 관점과 사건 둘 다에 불확실성을 일으키지만, 다른 요소들도 불확실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재귀성이 아닌데도 인간사에 불확실성을 일으킵니다. 사람마다 이해관계가 다르면 일부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데 이것도 불확실성의 원천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추구하는 여러 가치관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재귀성에서 비롯되는 불확실성보다 이런 요소들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이 훨씬 많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불확실성을 뭉뚱그려서 '인간 불확실성의 원리'라고 부릅니다. 이 개념은 재귀성보다 광범위합니다. 


 재귀성 개념을 투자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가치와 가격은 상호종속변수입니다. 다시 말해, 둘의 관계는 '재귀적'입니다. 가치는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금 가격은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거품은 이런 식으로 형성됩니다. 소로스는 자산 가격에 거품이 형성되는 것을 목격하면 즉시 자산을 사들여 '불 난 곳에 기름을 붓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재귀성을 극대화시킵니다. 반면에 가치투자자는 소로스와 상반된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가격이 하락할 때 자신을 매입합니다. 가치와 가격의 괴리가 발생했다고 확신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로스의 말이 맞다면 그들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재귀적 과정에 의해 가격 하락이 가치 하락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다시 가격이 상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두 관점 모두 올바릅니다. 가치투자자는 가치와 가격의 괴리가 해소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재귀성 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치투자자들은 너무 성급하게 주식을 파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재귀적인 피드백은 계속되는 데 반해, 그들은 10,000 원에 도달하면 자산을 처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가치투자가 재귀성 이론에 비해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두 이론은 대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가치투자가 가치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 문제는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임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치를 내재가치와 명목가치로 구분 짓는 것입니다. 내재가치는 가정 위에서 완전한 가치입니다. 즉 가정이 옳다면(다시 말해, 기각되기 전까지) 이 수치는 잠정적으로 진실일 수 있습니다. 반면 명목가치는 시장 참여자들이 일시적으로 합의하는 가치입니다. 특정 자산의 가치에 대해 "10,000 원 정도 하겠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추상적인 것입니다. 이는 재귀적 과정에 의해 변동될 수 있으며, 가치투자는 재귀성 이론을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나은 이론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