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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야 Aug 12. 2022

뜬구름 잡기

MEMO - 6

2022.07.13(수)_뜬 구름 잡기


 글쓰기는 나에게 항상 버거운 작업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은 순전히 자기만족과 개인적인 신념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한다. 그러나 습득한 모든 지식을 여러 상황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것들이다. 이를 한 데 모아 정제할 수 있다면 어떨까? 가공된 생각들은 각각의 가설이 되고 우리는 거대한 실험실에서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나의 경우 투자와 관련된 주제를 바탕으로 글을 쓴다. 수년을 해오니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을 투자와 연관 짓는 데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 물론 지식을 습득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일련의 과정은 항상 고난의 연속이다. 수십 년을 한다면 쉬워질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세공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잠시 뒤로 미뤄두자. 보다 더 큰 난관이 있다. 


 모든 투자자는 일생에 걸쳐 자신의 투자 철학을 발전시킨다. 누구나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는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이나 제시 리버모어Jesse Livermore의 책을 읽는다. 점차 스펙트럼을 넓혀 나가면 앙드레 코스톨라니André Kostolany나 워런 버핏Warren Buffett같은 탁월한 투자자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수년 동안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알려진 거의 모든 투자자의 철학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자신만의 철학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게 된다. 투자 철학은 대략 이런 식으로 발전한다. 초기에 존 템플턴 경Sir John Templeton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템플턴 경은 주식시장의 역사에 남을 만한 유명한 말을 했다. 


“시장에 피가 낭자할 때가 최적의 매수 타이밍이다. 설령 그것이 당신의 피일지라도.”


 투자자의 일생에서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배우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말이 때때로(심지어는 자주) 충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템플턴 경은 가치투자와 역발상 투자로 대표되는 인물인데, 간단하게 이들은 가치보다 싸게 주식을 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즐긴다. 반대 진영에는 영란은행을 파산시킨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같은 투기꾼이 있다. 가치투자자들은 가치를 어느 정도 고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소로스는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경제 이론은 가치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훈련시켰지만, 현실은 가치가 재귀적 과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로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도 복잡해서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곡된 관점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세상은 다시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은 ‘재귀성 이론’의 주된 내용이다. 템플턴 경과 소로스의 말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둘 중 어느 방법을 택하더라도 시장에서 살아남아 돈을 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투자 철학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레이엄과 피셔의 철학을 모두 수용해 새로운 길을 개척한 버핏이 좋은 예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완벽한 일대일 대응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이론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상반된 이론이 몇몇 유사점을 보이는 경우는 물론이고,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쉬운 길, 다시 말해 이론의 한쪽 면만 보는 경우에는 쉽게 편향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약간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 이론의 양면을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선대의 투자자들이 한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수용은 반드시 오해를 낳는다. 가치투자와 장기투자를 혼용하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버핏을 가치투자자라고 생각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스승은 가치투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핏의 스승은 그레이엄 말고도 더 있다. 필립 피셔Philip Fisher와 찰스 멍거Charles Munger이다. 둘은 그레이엄과 다른 방식의 투자자지만 그레이엄 못지않게 버핏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엄밀한 의미의 가치투자는 가치가 가격보다 저렴할 때 매수하는 것을 뜻한다. 그레이엄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업의 청산가치보다 저렴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멍거는 적당한 기업을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라고 조언한다. 피셔는 한 술 더 떠서, 위대한 기업의 보유 기간은 ‘영원히’라고 말한다. 적어도 버핏은 순수한 가치투자자가 아니다. 이런 버핏이 “주식을 10년 이상 보유할 것이 아니라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가치투자와 장기투자를 동일시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간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투자자들은 버핏의 말을 선택적으로 수용했다. 버핏은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 속한 기업들 중에서 5~10년 뒤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기업에만 투자한다고 말했다. 다른 투자자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삼성전자가 망할 일이 없는 우량주식이라고 말하며 투자하지만 삼성전자의 사업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얼마 전, 하만 카돈 스피커를 사려고 삼성전자에 투자한 지인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그게 뭐냐는 듯한 그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투자자들의 이런 행태는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정보를 표면적으로, 그리고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투자철학은 선대가 말한 것의 표면적인 의미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론의 양면을 모두 보려고 노력하고, 그들이 한 말의 의미를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피셔의 말을 듣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애플 같은 위대한 기업을 사서 팔지 않는 것이 아니다. 피셔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고민하고, 위대한 기업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위대한 기업이 무엇인지도 정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위대한 기업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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