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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야 Sep 16. 2022

안전마진 말고

MEMO - 7

2022.09.02(금)

아무리 좋은 기업의 주식일지라도 비싸게 산다면 대가를 치를 수 있다. 핵심은 '싸게' 사는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개념은 없다. 


『현명한 투자자』의 저자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은 안전마진의 크기가 언제나 매수 가격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어떤 가격에 매수하면 안전마진이 충분하지만, 그보다 높은 가격에 사면 안전마진이 적으며, 훨씬 더 높은 가격에 사면 안전마진이 전혀 없다. 이렇게 대부분 성장주의 가격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서 안전마진이 충분하지 않다면, 성장주에 분산투자해도 만족스러운 실적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상습적으로 고평가되는 성장주의 위험을 현명한 종목 선택으로 극복하고자 한다면, 특별한 통찰력과 판단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공황 시절에 자신의 이론을 개발했던 그레이엄은 안전마진을 설명할 때 가격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관점은 타당하며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레이엄에 따르면 안전마진은 순운전자본과 주가의 차이다. 순운전자본Net Working Capital이란 유동자산에서 유동부채를 제한 값을 말한다. 그는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에서 1년 내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유동부채를 뺀 나머지를 기업 가치라고 생각했다. 순운전자본보다 시가총액이 낮을 때 기업이 저평가돼 있고, 특히 순운전자본의 2/3이하면 좋은 매수 기회라고 말한다.


Margin of safety


그러나 그레이엄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다면 살 수 있는 주식이 거의 없다. 1940년대와 2022년은 비슷한 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다르다. 마크 트웨인Mark Tawin은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라고 말했다(그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여러 해 주식시장에서 살아남으면서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냈다. 안전마진을 확보하고 기업에 투자하고 싶지만 그레이엄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면 포트폴리오는 따분한 사양산업들로 뒤덮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가가) 고속 성장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둘 사이에 적절한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결과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나는 안락한 그의 품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아직도 그가 내 몸의 일부(아마도 많은 부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우선 그레이엄의 청산가치 공식은 그대로 인용했다. 거기에 순운전자본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1년 치 영업이익을 더해 ±10%의 오차범위를 두었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기업을 보는 동시에 가치는 단기적으로 평가하려고 했다. 100년 동안 벌어들일 현금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방식이 적어도 내겐 터무니없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가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고 믿는 쪽이기 때문에 정확한 가치 평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기준점으로 사용할만한 매수 기준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나만의 '안전마진' 공식이 탄생했지만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아마도 그레이엄 방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나의 방법은 성장성이 낮고 현금과 유형자산 보유량이 무시무시하게 많은 기업의 가치가 높게 나오는 반면, 고속 성장하는 기업의 가치는 터무니없이 낮게 산출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내가 죽고 난 다음 올바른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관심 밖의 일이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극단적으로 시대를 잘못 타고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리스트를 죽 훑어보니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기업들 중에서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되는 기업들이 눈에 띄었다. 낮은 성장성과 예상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 실적, 높은 현금 보유량과 형편없는 배당금이 이들의 공통점이었다. 기업을 통째로 인수할 수 있다면 훌륭한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음이 분명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과감하게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 기업들은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었지만 투자나 배당을 거의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에게 현금은 계륵 같은 존재였다. 현금 보유량에 상한선을 두면 어떨까? 순현금의 최대량을 유동부채와 동일하게 설정했다. 형편없는 기업들은 모조리 사라졌지만 수익성이 낮은 기업은 여전히 존재했다. 


이맘때쯤 나는 잭 슈웨거Jack Schwager의『시장의 마법사들』시리즈를 즐겨 읽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트레이딩에 적합한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스티브 왓슨Steve Watson은 이렇게 말했다. "자금은 유한합니다. 따라서 늘 최고의 아이디어에 투자한 상태여야 하죠." 그의 말은 피셔의 그것과 합쳐지면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최고의 기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출처: yes 24

돌고 돌아 나는 영업이익률로 눈을 돌렸다. 1) 현금 비중이 과하지 않으면서 유동부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2) 해자나 특별한 매출 구조로 인해 수익성이 높은 기업을 찾아다녔다. 주식시장을 모험하는 동안 나는 셀트리온이나 클래시스, 티씨케이 같은 좋은 동료를 여럿 사귀었다. 


결과적으로는 시장 대비 초과 수익을 얻었다. 그러나 그레이엄과 비교한다면 형편없는 의사결정이었다. 오로지 경험에 의존한 모델을 사용했기 때문이다(물론 운의 영향도 크다). 특히 누군가 나에게 "기업 가치를 계산할 때 1년 치 영업이익을 더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또다시 형편없는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마침 영업이익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레이엄의 방식은 탁월하지만 그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면 살 수 있는 기업이 거의 없어요. 기껏해야 따분한 사양산업 정도겠죠.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그렇다고 너무 과하지는 않게) 프리미엄을 더할 필요가 있었는데 브랜드 가치는 측정하기 어렵고, 매출액은 기업 가치가 과하게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어요. 다음으로 본 것은 당기순이익인데 부동산 처분 같은 일회석 손익 때문에 당기순이익이 크게 변동하는 것을 목격하곤 영업이익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이유는 가격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가치다. 보다 정확하게는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기업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 매출 구조, 경쟁우위 같은 것들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 수치만 대입하면 결과가 나오는 가치평가모형과 달리 정성적 분석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정성적 분석을 통과한 기업에 한해서만 '자격'이 주어진다. 가격이 폭락했을 때 포트폴리오에 편입될 수 있는 자격 말이다. 내 가치평가 방식은 이런 시장 상황에서 어쩌다 운 좋게 들어맞았다. 기업가치를 보수적으로 평가했더니 시장이 조금만 상승해도 살 수 있는 기업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9년의 한일무역분쟁이나 2020년의 팬데믹이 발생하고 시장이 폭락했을 때, 가격은 내가 평가한 가치만큼 떨어졌다. 나는 당연히 매수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었다. 좋은 기업을 미리 선정해 뒀다가 시장이 폭락할 때 매수하면 되는 것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다. 개별 기업의 안전마진을 고민할 시간에 보고서를 하나라도 더 봤다면 매수할 수 있었던 좋은 기업들을 놓쳐버렸다. 


결국 핵심은 좋은 기업을 찾는 것이다. 기다리면 가격은 자연스레 싸진다. 그때 행동할 용기만 있으면 충분하다. 


좋은 기업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정 수준의 안전마진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지불한다면 의미 없는 짓이 되겠지만, 당신이 트레이더가 아니라면 가격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투자는 기업의 일부를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기업을 사라. 물론 싸게 사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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