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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Feb 01. 2022

또 하루 멀어져 간다
(feat. 영화 더 파더)

 한참 수다 중에 친구가 말을 끊고 답답해한다.. 아.. 그거 뭐지.. 아..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내가 말하려던 게.. 그때부터 시작되는 스무고개. 계속되는 질문과 설명..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사라지고 그 단어에 근접해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서야 떠오르게 된 그 소중한 단어를 붙들고 허무함에 실소한다. 나 치매 아니야? 아니 왜 생각이 안 나.. 야 니가 치매면 난 중증이야. 남들은 이런 걸 노화라고 불러. 그때부터 서로 질세라 건망증 에피소드를 쏟아낸다. 이러한 강력한 동질감 덕분에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인생길이 아직은 버틸만하다. 

 예전 같지 않은 기억력과 건망증으로 인한 실수가 잦아질수록 우리는 문득문득 자신을 의심해 본다. 그리고 '치매'가 아닌 '노화'라는 사실에 안심하다가도 '노화'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임을 떠올리면서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현실에 충실한 삶은 모든 인간의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우리는 삶이 주는 쾌락과 즐거움, 때로는 고단함에 파묻혀 삶의 끝을 살펴볼 여유가 없다. 아직은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고 기억이 온전하며 건강하니까. 나이 드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거기까지. 아직은 거기까지.

 모든 병이 무섭지만 특히 치매가 주는 공포는 특별하다. 가족과 주변인들의 고통도 무시할 수 없지만 나의 모든 행동을 나만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친다. 영화 더 파더는 치매 당사자가 하루하루 느끼는 공포와 불안감, 혼란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주인공의 심리만으로도 공포와 스릴러를 넘나 든다. 하루가 저무는 긴 시간도 주인공에게는 찰나로 느껴지고 인물과 공간의 뒤섞임 속에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망상인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뒤엉킨 채로 쌓이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이 잠시나마 돌아올 때는 거꾸로 시간여행의 어린아이가 되어 너무도 서럽게 오열한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아들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다 드러내며 애기처럼 웅크려서 칭얼대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녀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삶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의식은 슬픈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다룬 영어 지문 내용이 대충 이랬다. 어떤 사람이 인공심장을 달거나, 사고로 인공 팔을 가지게 되었다 해도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러나 기억을 잃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다. 영어 표현은 He is not here anymore 였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이 없는 그는 이곳에 있어도 없는 사람이 된다. 저명한 언어학자 앨리스가 중증 치매환자가 되는 영화 제목은 '스틸 앨리스'이다. 기억이 사라진 그녀는 여전히, still, 앨리스일까. 분명한 것은 모두 관찰자의 시점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더 파더의 앤소니는 잊혀지는 자신의 기억과 하루하루 싸우고 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고 실패가 뻔한데도 그는 매일매일 낯선 자신을 마주하고 살아낸다. 그가 보여주는 외롭고 처절한 몸부림에 몰입하다 보니 나이 듦 그 너머를 들여다볼 용기가 아주 조금은 생기는 것 같다. 무의미해 보이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인간의 숙명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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