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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미니 Jan 16. 2022

Personal Shopper

왜 퍼스널 쇼퍼인가

 영화가 끝나면 이게 뭐지? 내가 뭘 본거지? 하는 영화가 있다. 결말까지 열심히 달려오긴 했지만, 중간중간 걷다가 쉬기를 반복해야 하는 그런 버거운 영화 말이다. 감독은 관객의 자유로운 상상과 해석을 기대한다지만 그 불편함을 참을 수 없는 나는 검색창을 두드려 정답 찾기에 나선다. 친절하게 써 내려간 블로그 해설판을 찬찬히 읽으면서 영화 보는 내내 곳곳에 붙여놓았던 물음표를 하나씩 떼기 시작한다. 설명이 필요한 영화. 나는 무지했고 감독은 불친절했고 영화는 심오했다. 그래도 꽤 길게 여운이 남는 걸 보면 장면 하나하나의 해석과는 별개로 영화가 주는 울림은 분명 있는 듯하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주인공 모린에게서 욕망과 집착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렸고 일상의 사소한 불안과 두려움조차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크릿 저자 론다 번의 말이 떠오른다. 좋은 것을 끌어당겨라. 나쁜 것 말고. 지금 당신이 하는 생각이 앞으로 당신의 삶을 만들어낸다. 

 타인의 삶, 질투와 동경 사이 그 어딘가 

 주인공 모린의 직업은 퍼스널 쇼퍼. 고가의 패션 아이템들을 직접 고르고 돈을 지불하지만 진짜 주인을 대신하고 있을 뿐 모린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녀를 고용한 부유층 키라의 까탈스러움 때문에 착용해 보는 것 조차 금기되어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예쁘고 화려한 것이 눈앞에 있다면 내 소유이길 바라게 된다. 모린 역시 금기된 욕망 앞에 조금씩 욕심을 드러낸다. 타인의 삶을 동경하는 것은 내 삶에도 희망과 활력으로 작용하지만, 질투를 넘어 탐하게 될 때는 죄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복잡한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욕심이 과해지면서 선을 넘을 때이다. 비교하는 삶으로부터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우리 역시 수많은 SNS에 노출된 타인의 삶을 훔쳐보며 동경과 질투의 경계에서 위태위태한 균형을 맞추고 있지 않은가. 

집착은 정신을 좀먹는다

 모린은 죽음에 집착한다. 영매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얼마 전 쌍둥이 형제 루이스가 심장마비로 죽었고 자신 역시 선천성 심장 기형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루이스의 영혼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지만 시간이 갈수록 루이스의 신호보다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신념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그 생각이 긍정이냐 부정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이 펼쳐진다. 문제는 부정의 생각에 미치는 사람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악마의 존재이다. 불안감은 사소한 자극에도 요동치고 멘탈을 붕괴시킨다. 정신 차리고 보면 너무도 선명한 허점들을 놓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모린은 충분히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으로 채워진 믿음은 망상을 낳고 인간의 정신은 믿고 싶은 대로 끌려가고 만다. 다시 한번 론다 번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당신이 하는 생각이 앞으로 당신의 삶을 만들어낸다. 

현타는 바로 지금

 인생이 고달플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상상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현실 도피를 위한 상상이다. 이는 현실 부정으로 이어지기 쉽다. 모린이 영혼과 대화하는 엔딩 장면에서 Just me?라고 묻는 모린의 질문과 그 대답은 약간의 충격과 혼란을 안겨준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모린이 만들어 낸 망상인 것인가.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과 망상이 현실이 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우리가 판타지를 동경하는 것은 일상에서 못 이룬 꿈을 아름답게 포장해주기 때문이다. 일상과 판타지에는 분명 경계가 있다. 그러나 모린의 집착이 빚어낸 망상은 현실을 잠식한다. 모린에게 현실 자각 타임이 필요한 순간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 현재를 살아가는 것. 정신을 온전히 붙들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중심을 잡고 사는 것. 그래서 쿵푸팬더의 사부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history, 내일은 mystery, 오늘은 gift, 그래서 우리가 현재를 present(선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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