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마음 비우기의 한 해였다. 야심 차게 적어나가던 소원 노트는 책장 한편을 차지하는 유물이 되어 버렸고 무언가를 바라기보다는 마음을 비우는 시도가 많아졌다. 나에게 일어나길 바랬던 수많은 기적 같은 일들이 다른 누군가의 인생에 살포시 내려앉는 행운을 쭉 지켜보면서.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듣는 조언 중 하나가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들 한다. 짧고도 단순한 이 한 문장을 실천하기가 어찌나 어렵던지. 결국 자책과 성찰, 명상과 울분, 깨달음과 도전은 반복되고 어느덧 또다시 마음을 비우려고 애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정말 마음을 비우고 모든 걸 내려놓으니 그때부터 일이 잘 풀렸다던가,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던가, 원하는 걸 비로소 얻게 되었다는 등의 성공 스토리에 우리는 꽤나 익숙하다. 나 역시 마음 비우기에 이토록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포기하기 직전 얻게 되는 성취의 달콤함, 인생의 반전 같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한 주는 너무도 사소해서 글로 옮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미약하고도 비과학적인 어떤 법칙에 이끌리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어떤 물건이 필요해서 발품을 팔다가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른 곳에서 생각지도 않게 원하던 것을 얻게 되었다. 또 어떤 날은 계획한 일에 변수가 생겨 이건 안되나 보다 하고 마음을 비우는 그 순간에 갑자기 일이 잘 풀려 무사히 일을 끝마쳤다. 그다음 날은 상대하기 버거운 대상과의 갈등 상황에서 두렵지만 물러서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갑자기 그 상대가 정중히 사과를 하는 것으로 갈등은 마무리되었다. 신기했다. 사소한 일상이지만 연속해서 이런 일들을 경험하고 나니 여기에는 마음 비우기 법칙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을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 비우지 않았던 것이다. 원하는 물건을 손에 얻은 첫날 포기하던 순간의 마음은 이런 것이었다. 오늘 이걸 꼭 구해야 하지만 이렇게 찾아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원하는 걸 얻지 못했지만 괜찮다. 정말 괜찮은데 마지막 매장인 것 같으니 들어가나 보자. 어차피 가는 방향인데 뭐... 계획대로 일이 풀린 날은 이랬다. 성격이 급하고 완벽주의자인 나는 변수가 발생하는 것에 예민하다. 평소 같았으면 죽을 끓이든 누룽지를 만들어버리든 다 끌어안고 맹렬히 전사하는 잔다르크가 되었을 텐데 이번에는 주변 조력자들에게 떠맡겨버리고 나는 도망쳐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나보다 더 민첩하고 프로답게 일을 해결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대화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 안하무인과의 1차전이 끝난 후 내가 내리는 결정으로 인해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30분도 되지 않아 그가 기대하지도 않은 사과를 한 것이다.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 수도 있고, 일상에서 이런 일쯤 흔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 흔한 일상이 반복되고 누적되어 누군가는 지치고 힘든 인생을 짊어지고, 누군가는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의 주연이 되지 않나. 나는 마음을 반만 비우고 대신 나머지 반은 희망과 기대를 채워 넣었던 것 같다. 완전히 포기했을 때의 부정적인 마음을 끌어안기 싫고, 계속 희망 고문하면서 스트레스받는 것도 원치 않는다. 마음을 다 비우면 허무함에 대처하기 어렵고, 마음을 희망으로만 채우면 돌아오는 실망감에 상처가 깊어진다. 치킨처럼 딱 반반이 좋다. 비우는 맛도, 채우는 맛도 적당히 경험해 봐야 인생은 균형 잡기의 연속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