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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자연 Jul 21. 2023

원 테이크 영화 같던 날

서로 알지 못하기에, 낯설기에, 완벽한 타인이기에 나는 더욱 상상합니다.


봄과 여름 사이. 적당히 신나는 팝송이 깔린 카페에 앉아 있어요.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데 섞이는 건 또 다른 자연스러운 배경음악이 됩니다. 여러 사람들의 발바닥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까닥거리는 걸 보니 이 카페 플레이리스트가 제법이네요.  이 작은 동네 카페에는 아이스크림 라떼가 유명한지 다들 귀엽고 뽀얀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커피를 마셔요. 녹을세라 열심히 속도에 맞추는 듯해요. 저는 작업을 하려다 영감을 도둑맞은 사람처럼 앉아 있다 글을 끼적거려요. 오늘은 괜찮아요. 스스로 괜찮다고 말하면 괜찮은 일이 됩니다.



아르테미데의 조명이 있는 작업 공간과 글라스 유리로 장식된 벽면과 계산대, 베이지 컬러의 나무판과 차갑고 도회적인 스테인리스의 조화가 마음에 드는 깔끔한 공간입니다. 카페 한가운데엔 노트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큰 바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고, 그 속엔 고요한 적막을 깨는 타자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마치 이들이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공간을 분리시키는 듯해요.



고개를 돌려 입구 쪽 통창 너머 풍경에는 오래된 간판의 24시 에이스 마트가 보여요. 주인집 아주머니로 보이는 분은 어찌나 부지런한지 밖의 매대가 가지런히 정돈된 상품으로 가득하고 일찍 나온 여름 과일들을 쭈그려 앉은 채 분주히 소포장하며 수다까지 떨고 계시네요.



이 카페에 한데 모인 낯선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푸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저 또한 그들을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어요. 햇살이 따스한 유월 초의 풍경을 담고 있어요. 서로 알지 못하기에, 낯설기에, 완벽한 타인이기에 나는 더욱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가끔 모두가 내게로부터 관심을 꺼준다는 것, 시선을 거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적당한 소음이야 말로 내 속의 잡음을 상쇄시켜요. 아무 소리가 없는 너무나 고요한 침묵의 공간에서는 내 소리가 나를 너무 시끄럽게 할 것이 뻔하거든요. 음악과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혼재된 소음이 편안하게 해 줘요.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해요. 그 기회를 틈타 그들을 관찰해요. 마치 영화를 관람하는 것처럼 제삼자가 되고는 해요. 삼인칭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꽤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어요.



카페를 나와 대형 서점에 갔어요. 나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깜빡해요. 예를 들면 운동 후 땀이 나는 걸 좋아하지만 운동하는 걸 깜빡하는 것처럼요. 여백이 많은 예술 작품, 영감을 주는 색상, 유려한 문장, 한껏 고양시키는 클래식 음악, 어딘가 분주하지만 조심스러워 보이는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는 깔끔한 표지의 책들, 소란하게 만드는 단어들이 가득해요. 모두 내가 애정하는 것들이죠. 주저 없이 바닥에 털썩 앉아 책을 펴 마음을 다해 문장들을 읽어요. 오늘 내 마음을 파고들어 올 문장과 생각들을 탐닉해요. 또 종종 공간 속의 사람들을 관찰했어요. 마주한 풍경들은 이랬어요.



일본 소설 읽어도 돼요?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어요'라는 책표지를 보며 이 책을 읽어도 될지 엄마에게 전화해 묻는 여자 아이

꿈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다 결국 코를 골던 할아버지

한편에서 소곤거리며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커플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로 책을 뚫어버릴 듯한 눈빛의 아저씨

의자 위로 올라가 쪼그려 앉은 자세로 글을 읽는 맞은 편의 여자

그것을 관찰하며 매우 흡족스러운 나까지.



멈춤이 없는 한 편의 원 테이크의 영화를 본 것 같은
어쩌 그 영화 속 주인공이었던

스물여덟의 유월 초 어느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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