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름다운 빛을 정작 나는 볼 수 없기에 나는 믿어야 한다.
유일하고 빛나는 존재
온 세상만물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어보는 것
2년 전, 나는 첫 직장과 고군분투하며 씨름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무게가 짓누르던 시절. 처참히 짓이겨졌다. 도무지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이렇게 버티고만 있는 게 맞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반복되는 고된 상황 속에서 정확한 답을 찾고자 했다. 어리석었다. 삶에 정확한 답이 어디 있던가. 절대 손해보지 않으려 싸우는 그 미운 마음이 내게 생채기를 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실패가 두려워 무엇도 시작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실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정의들. 누군가 정해놓은 답을 쫓으며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그 싸움에서 진 건 당연히 나였다. 시간이 갈수록 답이 없는 이 싸움에 지쳤고 혼자서 더 깊은 동굴을 찾아 들어가곤 했다. 어느 순간 완벽한 소모품으로 느껴졌고 그만두고 싶었으나 주변 모두가 만류하였다.
그만두면 그만이라는데, 그 그만은 도대체 어떻게 그만하는 건데? 그만두는 건 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걸까. 다들 꾹 참고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라는 건 어디서 똑같이 배운 걸까. 버티지 않은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버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사랑이 없으면 뭐든 먹어 치워 살을 찌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당시 내 모습이었다. 공기로 채운 풍선이 내 몸에 가득 찬 것처럼 허기 친 상태였을 거다. 갈급한 무엇을 음식으로 몸속에 꾸역꾸역 채워 넣었다.
사람들 만나는 일도 현저히 적어졌다. 초라하고 비루한 내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조금 더 나아지면 그때 봐야지. 지금은 아니야. 차일피일 미뤘던 친구와의 약속으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약속 장소였던 한강에 갔다.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사람인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단순했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복잡하고 미묘하게 굴더니 말이다. 그 단순함이 스스로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이 바람에 걱정이 살금 날아가고, 강가 풍경에 적잖이 위로를 받는다. 얼마나 발악했는데 고작 이런 걸로 괜찮아질 수 있다니. 가늠하기 힘들 정도가 아니었던가.
무거운 신을 신은 것처럼 터벅터벅 걷다가 대여섯 마리의 오리들이 모여 있는 작은 천을 지나가고 있었다. 햇살이 좋은 초겨울 날이었다. 모든 오리의 뒤에서 빛이 났다. 너무나 눈이 부시고 선명하고도 영롱한 빛. 뒤따르는 오리는 앞선 오리의 빛은 볼 수 있어도 정작 자신의 빛은 스스로 볼 수 없었다.
그 오리의 모습이 어쩌면 나와 같지 않을까 하는 찰나의 생각을 잡는다. 그 아름다운 빛을 정작 나는 볼 수 없기에 나는 믿어야 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오리의 꽁무니를 보며 시기하고, 질투할 것이 아니라 내 뒤에서도 분명 빛나고 있는 것을.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음을.
그 믿음은 밑져야 본전 아닌가. 절대 손해 보지 않을 믿음. 남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빛을 보고 있다. 그 빛남을 알려주자. 누군가도 나처럼 내 빛을 영영 자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오리 처지일 테니.
믿음은 나를 살게 한다. 믿음은 삶의 목적을 만든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