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머니 Nov 30. 2023

22년짜리 아빠, 11년짜리 아버지

어릴 때 아빠한테 잘못한 일이 있거나 돈이 필요하면 나는 "아버지이~~~"하고 불렀다. 그럴 때면 아빠는 조금 덜 혼내거나 용돈주는 날이 아닌데도 엄마 몰래 돈을 줬다. 내가 아쉬울 때만 다정하고 공손하게 "아버지이~~~"하고 불렀다. 힘들고 험한 건축일을 하는 아빠가 부끄러워서 하굣길에 마주치면 친구 손을 잡아끌며 못 본 척  지나치기도 했다. 노가다 말고 다른 거 했으면, 친구 아빠처럼 넥타이 매고 다녔으면 좋겠다 했던 철없던 말들을 22살에 아빠 장례식장에 앉아서 후회했다. 딸 둘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돌아가신 아빠지만 늘 좀 더 살아계셨으면 싶었던 순간은 내가 아쉬울 때였다. 돈 버는 게 힘들 때, 친구들이 아빠 믿고 회사 그만둘 때, 엄마가 나만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될 때 그랬다.


아빠 없이 12년 살다가 결혼하고 시아버지가 생겼다. "아버니임~~~"하고 불러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아버지"하고 불렀다. 눈치 빠르고 약은 나는 시아버지가 약자임을 알았다. 언제나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이니까. 시아버지는 내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 맞다"하셨다. 내가 만들어 드리는 음식은 뭐든지 "맛있다, 최고다"하셨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해봐라, 할 수 있다"하셨다. 일러 주시고 염려해 주시는 말을 잔소리라며 안 듣던 며느리가 TESOL자격증을 따고 싶다니 몇 백만 원을 주시며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산후 우울증을 핑계로 짜증을 내고 얄밉게 구는 며느리가 대학 가고 싶다니 등록금을 주시며 아버지만 믿고 공부하라고 하셨다. 돈 필요하고 아쉬운 일만 생기면 "아버니임~~~"하고 부르는 며느리라도 시아버지는 좋아하셨다. 예뻐하셨다.


작년 여름에 쓰러지신 분이 올해 겨울에 하늘가셨다. 휠체어에 앉아 반신 마비에 어눌한 말로 내게 "딸내미"하시던 분. 내가 왜 딸이냐고 며느리지 했더니 "너처럼 잘하는 며느리가 어디있노. 딸이지"하시던 분. 아빠 없이 12년을 살아온 며느리를 11년 동안 딸처럼 지켜주신 분. 이제 없다.


나는 앞으로 아빠도 시아버지도 없이 얼마나 살게 될까? 이기적인 나는 무뚝뚝하던 22년 아빠도, 잔소리쟁이 11년 아버지도 없이 살아갈 날이 두렵고 걱정된다.


지금쯤 아버지가 아빠 만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손녀, 손자 이야기 해주시겠지 싶다. 외로웠을 우리 아빠와 낯설어할 우리 아버지가 의지하며 같이 계실 생각 하면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딸의 두려움과 며느리의 걱정은 눈치채지 마시고 편안하게 쉬면서 기다리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로또당첨 무사귀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