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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l 19. 2023

로또당첨 무사귀환

기다렸다는 듯이, 참지 않겠다는 듯이 비가 쏟아붓는다. 이 정도 왔으면 하늘에 비도 씨가 마르지 않았을까 싶지만 어디서 물을 길어오는지 꾸준히 끊임없이 퍼붓고 있다. 밖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빗소리가 들리지만 집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들린다. 잠들기 전에 제일 신나 하는 남매는 최선을 다해 깔깔거리고 웃는다. 11살 누나가 5살 동생을 내복 속에 집어넣어서 머리만 쏙 빼서 안아준다. 불편하게 안고서는 둘 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지켜보는 엄마 아빠도 이제 그만 자자고 하면서 웃는다. 이거 보려고 낳아서 키우는구나 싶다.


뉴스를 보지 않은 지 몇 년이 지났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SNS와 만나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굵직한 이슈들을 들으면 그만이었다. 자연재해, 스캔들을 자세히 알아 뭐 하냐며 안 봤다. 그런데 또... 사람들이 죽었다. 파도 하나 없는 바다에서 배가 가라앉던 순간을 보며 며칠을 마음이 슬펐다. 핼로윈 수업 준비를 하다가 누구나 걸어 다니는 길에서 그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에 웃을 수 없었다. 유치원에 핼로윈 이벤트 수업은 안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차가 지나다녀야 할 도로에 물이 찼다고 한다. 뉴스를 안 봐도 어디서든 그 얘기였다.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인간이 막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했다.


공감 없는 사람들은 배가 천천히 바다로 침몰해 학생들이 죽어도 웃었다. 파릇한 젊음을 즐기려 한 너희들이 죄인이라며 청년들을 마약쟁이, 날라리라 비난했다. 아침에 출근한 사람들이 탔던 차가 물속에 잠겨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다며 촬영부터 해야 한다고 한다.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은 없다. 사람이 사는 일에는 행복과 불행이 함께 한다. 실수도 하고 죄도 짓고 자연 앞에 무기력해지도 한다. 일이 일어난 다음은 그래도, 적어도, 조금은 공감이란 걸 해주는 사람을 원한다면 내 욕심이 과한 걸까? 남이 슬플 때 같이 슬프고, 억울한 죽음이라 고개 끄덕여주고, 사고부터 수습하자고 말해주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원한다면 정치색을 들어내지 말라고 나무랄 건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사히 돌아왔고 남편이 비를 뚫고 사고 없이 집으로 왔다. 식구들이 머리를 맞대고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잠들기 전에 웃으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 그들의 무사귀환이 로또당첨보다 기적이구나 싶다. 그 기적 앞에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갔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식구를 기다리는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다. 빗소리가 귀가 따까운 정도다. 그래도 참아내고 들어줘야겠다.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 나는 모든 것을 잃은 그들의 울음을 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빗소리를 듣는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될 테니 차마 말은 보태지 못하고 그저 들어주며 눈물을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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