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에 만났으니 25년 친구. 명랑만화 주인공처럼 밝았던 친구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멀리 살아서 못 보고 몇 년 살기도 했다. 안 보면 보고 싶었고 자주 보면 속상한 일도 생기던 오래된 친구.
22살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22살 친구들을 장례식장으로 불러야 하는 줄도 몰랐다. 몇 달이 지나고 아빠가 돌아가셨다니 화를 내던 친구는 며칠 뒤에는 지리산에서 꽃농사하는 자기 아빠한테 가자고 했다. '몇 달 전에 아빠 돌아가신 나한테 얘 왜 이러지?' 하면서 따라갔다.
농사짓는 비닐하우스 옆에 작은 집. 아버지 혼자 농사 지으시며 밥도 해 드시는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친구랑 친구아빠랑 나랑 셋이서 잤다. 그날 밤에 아빠생각 많이 하면서 잘 잤다. 친구 아빠가 차려주는 밥 먹고 오미자차 마시며 인사도 못 하고 떠나보낸 아빠랑 하룻밤 자고 온 것 같았다. '친구야 고맙다. 덕분에 아빠 잘 보내드린 것 같다. 너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겠다.'소리 그때는 못했다.
25년 된 늙어버린 친구와 나. 젊고 예쁜 우정을 시작하기도 하지만 돌고 돌아 늙어버린 우리가 좋다. 45살이 되어도 명랑만화 주인공처럼 사는 친구. 매고 온 가방이 예쁘다니 그 자리에서 소지품을 빼려고 한다. 필요 없다, 샤넬백 사내라 하고 돌아왔더니 그 가방을 선물을 보내준다.
늙어버린 우정에 대처하는 법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것. 가방을 사주는 것. 맛있는 신비복숭아, 감자를 나누는 것. 벤츠살 때 같이 가자고 약속하는 것. 네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한다고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 자주 못 보고 무신경해도 그러려니 해주는 것. 그래도 니 옆에는 내가 있다 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