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도 예쁘기로 소문났던 엄마는 깡통시장을 좋아했다. 동네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하고 희한한 미제, 일제가 많다며 가고 싶어 했다. 엄마가 깡통시장에 다녀오면 화장품, 옷, 그릇부터 밥 넣어가기 미안할 정도로 예쁜 도시락통도 사 왔다. 방학이면 집에만 있던 나는 엄마를 졸랐다. 깡통시장에 언제 갈 거냐, 나도 데려가라고 했다.
듣다 지친 엄마가 내 손을 잡고 깡통 시장에 가면 눈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구경하느라 바빴다. 예쁜 소품, 귀여운 인형, 껍데기도 맛있게 생긴 외국 과자들을 보며 침을 흘렸다.
그렇게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엄마가 사주던 게 비빔당면이었다. 잡채도 아니면서 당면이 들어갔고 떢볶이도 아니면서 살짝 매콤했다.
한 그릇 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다음에 그 시장에 가면 또 먹게 되는 게 비빔당면이었다.
어릴 때 먹던 음식을 어른이 되어 먹어보면 안다. 그 시절 엄마는얼마나 어렸나 셈하게 된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엄마는 살기가 얼마나 고되었을까 짠한 생각이 든다. 예쁜 거 좋아하고 꾸미기 좋아하던 사람이 없는 살림에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버스 타고 간 시장에서도 마음에 드는 건 못 사고 지갑에 맞는 저렴한 걸 골라왔을 생각에 울컥해진다. 그런 엄마 손을 붙잡고 싸구려 비빔당면 한 그릇 먹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어린 딸을 보았을 그 마음도 조금 안다.
10대 딸과 관광객처럼 깡통시장을 돌아다니다 별미로 한 그릇 사 먹은 비빔당면은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갔다. 한 번 먹어보니 집에서 내가 만들어도 되겠다 싶어 해 봤더니 그 맛이 난다. 시장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다며 잘 먹는 딸. 이 아이가 자라서 40대가 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