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대신 지금을 택하는 진로 이야기
긴 교사 생활에서 2년 빼고 담임을 했다. 일반고에 첫 발령을 받아 그 중 고3 담임을 어렴풋 10여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진로 교사로 2년이다. 나는 일반고에서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고, 싸우며 살아왔다.
아이들은 곧 나였고, 나 또한 그들이었다.
내가 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윤리 과목을 가르쳤다.
철학과 삶을 이야기하며 아이들과 함께 깊이 고민하고 살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변하지 않았는 데 나의 아이들은 변했다. 아이들은 가치와 상처, 혼란한 삶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져갔다.
철학은 더 이상 살아있는 질문이 아니라, 그저 수능 과목의 이름으로만 남았다.
나는 그 거친 과정 속에서 지쳐갔고, 결국 진로 교사의 길을 택했다.
진로 교사가 된 후 매년 수시 상담 시즌이 오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샘, 돈 되는 직업이 뭐예요?”
“샘, 취업 잘되는 학과 좀 골라주세요.”
이 질문은 진로 교사로서 가장 마음이 아픈 순간이다.
1학년 때부터 진로 검사, 성격 검사 등 수많은 검사를 진행하며 아이들의 성향을 찾아주려 노력했는데,
막상 수시 상담 자리에서 검사지는 잊힌 채 돌아온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건 단 하나의 질문이다.
“샘, 그냥 골라주세요.”
하지만 미래를 정확히 누가 알 수 있을까. 그 대단한 챗GPT조차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수많은 미래학자가 ‘곧 사라질 직업’이라 예측했던 단순 노동직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
반대로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창작의 영역조차 기술의 발전으로 위협받고 있다.
확실해 보이는 미래는 없다.
어떤 직업이 안전한지, 어떤 길이 유망한지 명확하게 말해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스팁(STEEP) 기법을 사용한다. Social(사회) Technological(기술)Economic(경제)Environmental(환경)Political(정치) 이 다섯 가지 요소로 세상을 바라보며,아이들과 함께 ‘변화의 흐름’을 살펴본다.
가까운 미래에 가장 잘될 직업이 무엇인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건물주가 답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그것마저도 완벽히 안전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처를 견디며 일할 수 있는가이다.
돈을 버는 과정에서의 고통이 작고, 그 상처가 덜하다면
그것이 최고의 직장 아닐까.
아이들은 늘 미래에 발목이 잡혀 지금을 미룬다.
만나고 싶은 아이돌을 미루고, 친구와의 여행을 미루고,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미루고,
심지어 하고 싶은 일의 의미조차 미뤄둔다.
OECD 가입국 중 10대와 20대의 자살률 1위. 삶과 떨어져 멀리 있는 통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학교 현장에서 매일 마주한다.
웃으며 이야기하던 아이가 어느 날 세상에서 사라지고,
내 반의 누군가는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이 늘어나고 어떤 아이들은 학교를 떠난다.
어른들은 “어쩌지…” 하며 난감해하지만,
정작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진로 수업을 시작할 때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래를 버리고, 현실만 살자.”
불확실한 미래를 끌어와 불안해하기보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기쁜 것을 먼저 알아가자.
그다음에 내가 할 일, 그리고 그 일이 미래와 어떻게 연결될지를 생각해도 늦지 않다.
모든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지켜주고 싶다. 미래에 억눌린 채 오늘을 잃어버리는 대신,
지금의 나를 찾도록 돕고 싶다.
아이들과 나눈 진짜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함께 고민했던 직업에 대한 태도를 남기고 싶다.
화려한 전망이나 최신 트렌드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아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이들이 현재를 살아가며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길 바란다. 같은 불안을 겪는 한 인간으로 그들 곁에서 다독이고 싶다.
포기로 보일 이야기가 아니라 너머 간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버리면 가벼워져 가뿐하게 날아 언덕도 바다도 넘지 않을까
「미래를 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