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졸들의 고등학교 적응기
찬란하고 파릇한 봄날. 꽃길 사이를 걷는 이들의 표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귀여운 중졸들을 보면 만개한 꽃들보다 아름답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 매정하게 입시 현실을 말하는 날들이 계속된다. 내와 상담하는 아이들 눈에서 목련 꽃잎 떨어지듯 눈물이 떨어진다. 고통스러운 순간들이다. 봄은 더이상 이제 봄이 아니다.
“근거를 말해봐.”
“생기부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해.”
“보고서만 쓰지 말고 결과물을 만들어.”
3월이 되면 나는 이 말을 반복한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설명하려 애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얼굴은 점점 굳어간다. 교실 앞에 선 나는 분명 아이들을 돕고 싶어서 말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그 말들이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아이들은 잘하고 싶다는 욕망과 잘해야 한다는 강요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불안과 초조는 생각보다 깊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 마음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 와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경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를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상처받을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늘 복잡하게 만든다.
특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오는 시기, 그 간극은 아이들에게 너무 크다. 적응은 더디고, 기준은 높아지며, 비교는 노골적이 된다. 그래서일까. 어떤 아이들은 도파민이 즉각적으로 채워지는 게임에 몰두하고, 어떤 아이들은 도박과 유사한 자극에 빠지거나, 혹은 ‘덕질’이라는 몰입을 통해서만 버텨낸다. 그것이 잘못이라기보다, 어쩌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생존 방식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아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까해서 많은 책을 본다. 최근 읽은 토니 페르난도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에서 접한 공식이 떠오른다.
스트레스 = 기대 ÷ 현실
기대는 크고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때, 고통은 커진다. 이 간단한 문장은 아이들의 표정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이 공식을 안다고 해서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기대를 낮추라는 말은, 미래를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대를 낮추라고 말하기보다, 아이들의 ‘지금’을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 그리고 고정된 자아는 없다는 제법무아를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원인과 결과 속에서 흘러간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이 진리에는 ‘강요’가 없기 때문이다. 많이 알고 있지만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 어른을 만났을 때 느끼는 편안함처럼, 이 사유는 아이들의 마음에도 여백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얘들아. 인생이라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단다."
하지만 교실 밖으로 나가면, 이 모든 생각은 쉽게 무력해진다. 입시제도는 여전히 아이들을 등급으로 나누고, 숫자로 줄 세운다. 위로의 말을 건네고 상담실 문을 나서는 순간, 아이들은 다시 냉정한 현실과 마주한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인공지능과의 경쟁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다.
며칠 전 목련처럼 여리디 여린 한 아이가 상담을 하면서 많이 울었다.
“선생님,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요. 부모님이 제 학원비 내느라 고생하시는 게 너무 미안해요.”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아이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기대를 낮추라고 말해야 할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이기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라고 등을 떠밀어야 할까.
진로 상담교사로서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서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의 삶을 대신 결정해 줄 수는 없지만, 그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 서 있을 수는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정답 대신 질문을 남긴다. 조언 대신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아이가 자기 삶의 속도를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조금 느리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더 높이 올라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지 않도록 함께 걸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봄날에 날리는 꽃잎같은 아이들 곁에 앉는다.
“힘들면 언제든 상담실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