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도 폭력이에요
아빠,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단풍이 지는가 싶더니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몸이 자연스레 움츠러드는 날이 많아지고 있어요.
얼마 전, 마트에서 한 커플을 봤어요. 마트를 들어서기 전부터 서로 언쟁이 있었나 보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그 커플은 본인들끼리 대화를 하고 있었어요. 물론 남들에게 다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이죠. 그러다가 서로의 감정이 극에 달한 건지 남자는 소리를 지르고 여자는 울기 시작했어요. 욕과 함께 여기서 당장 나가라고 말이죠. 결국 중재자들이 나타나면서 조금씩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화를 낼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예전의 우리 집이 떠올랐어요. 왜냐고요? 우리 집은 화가 많은 아빠가 있었으니까요.
밖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던 아빠는 사람들을 통제하거나 각종 민원인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았겠죠. 그래서 그게 익숙해졌던 건지 집에서도 거칠게 행동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어요. 언성을 높이는 일은 다반사고 폭언마저도 일삼는 일이 많았었죠. 그리고 화가 나면 손에 있는 것을 바닥으로 던지시는 일도 종종 있었고요.
그래서일까요, 밥을 먹을 때도, TV를 볼 때도, 귀가시간이 조금만 늦어지더라도 아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어요. 아빠의 기분에 따라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으니까요. 함께 식사를 할 때마저도 분위기가 조금 나쁘다 싶으면 체하기도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었어요.
아빠는 내가 우리 집 가장인데, 우리 집에서 내가 눈치를 봐야 되나라고 생각하셨겠죠. 하지만 가족일수록 더 예의를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고 보니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관계가 가족이더라구요. 편하다는 이유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다 이해해 주리라는 생각에 너무 편하게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 같아요. 이런 걸 깨닫게 되니 나도 가족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겠구나 싶은 마음에 반성도 하게 됐어요.
아빠,
사회를 겪어보니 아빠가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요. 많이 힘드셨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10여 년의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저도 화날 때가 있고 속상할 때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짜증 나는 일이 집에서도 종종 생각나다 보니 혼자서 씩씩거릴 때도 있어요. 그게 원인이 되어 연애할 땐 연인과 다투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렇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한 가지 확실한 건 일과 가정은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일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해 버리면 그건 그 사람들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되어버리거든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아직도 아빠의 그런 모습들이 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연락을 끊은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화를 내는 남자들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두려워하는 제 모습이 남아있어요.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자동적으로 몸과 입이 얼어버리는 통에 할 말도 못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도 못하더라고요. 남이 화를 낼 상황이면 아예 피해버린다던지 내가 참으며 속앓이를 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도 했구요.
결국, 그 상황들이 모여 결국에는 탈이나 버려 이런 글까지 쓰게 되어서 조금은 속상하네요. 이런 이야기는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고 싶었는데.
아빠,
아빠는 때리지 않는다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무심코 하는 폭언과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크나큰 폭력이었다는 걸 알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