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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콩 Dec 03. 2023

아빠는 왜 그랬어?

성인 되면 하라는 말

아빠,


지난번엔 마음이 아파서 쓰다가 멈추다 하다가 글을 올리지 못했어요.

괜찮아졌다 싶어서 시작한 글이었는데 아직은 아니었나 봐요. 아직도 마음이 아픈 걸 보니까요.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안 좋은 기억들이 밀물 들어오듯 몰려들어와서 혼란스러워지더라구요.




아빠,


나는 아빠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맴돌아요. 어떤 말인지 기억하시나요? 아마 못하겠죠?


"성인 되면 하고 싶은 거 해. 그전엔 아빠에게 허락받아야 해."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 참고 지냈어요. 그래서 주민등록증이 나왔을 때, 그리고 만 18세 이상이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대학생이 됐을 때 집에서 벗어난걸 너무 기뻐했고 성인이 되었을 땐 더 많이 기뻐했었어요.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할 수 있다.

이 생각에 하고 싶은 것들을 쭉 나열해 보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이 있어요. 진정한 독립은 경제적인 독립이라는 걸. 부모님의 수입으로 생활하는 저에겐 내 마음대로 할 권리 같은 건 없었어요. 차라리 경제적 지원이 없었더라면, 힘든 엄마에게 생활비를 달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긴장하지도, 돈을 허투루 쓴다고 아빠가 엄마에게 뭐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아마, 엄마 아빠는 모를 거예요.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해 끼니를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김밥 한 줄로 때우곤 했었다는 것을.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편의점에 면접도 보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어요. 시급 2400원. 그때 당시에 정해져 있던 최저임금조차 충족하지 못했던 금액이었죠. 그렇지만 알바를 할 땐 정말 즐거웠어요. 물건을 채워 넣고 담배의 위치를 외우고(그땐 흡연자도 많았고, 제가 근무하던 주말 야간에는 술 마시고 담배를 사는 사람이 많았었어요.), 사람을 대하면서 재미를 느꼈어요.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했죠. 전화통화를 하면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걸렸거든요. 아빠가 알기 전에 당장 그만두라던 엄마의 말. 그리고, 아빠가 항상 하던 말.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아.'라는 그 말.


장학금을 받을 만큼 공부를 즐겁게 하지도 않았고, 차라리 알바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게 내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그 말을 했다가는 당장 집으로 들어오라고 할 것 같아서 말을 못 했어요.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때 큰맘 먹고 알바 신청을 했었어요. 무려 에버랜드 아르바이트였어요. 이걸 왜 신청했었냐고요?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유럽일주를 하고 싶었어요. 취직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못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면접 오라는 연락까지 받았는데, 결국 가진 못했어요.


여자애가 혼자서 무슨 해외냐. 얼른 졸업해서 취직하라는 이야기 때문에요.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면서요. 그때가 되면 맘대로 하라면서요.

하지만, 그 말은 그때뿐이었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저는 선택권이 없었어요. 그래서 더욱더 빨리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요. 취업하고 난 뒤까지에도 그럴 줄 몰랐지만요.


아빠,

성인이 되면 맘대로 하라고 했던 말, 진짜였어요?

아니면 그냥 걱정돼서 하셨던 말이에요?


어린 딸이 고생할까 봐 걱정돼서 그렇게 했던 말인 거였어요?


사회에 나와보니 '성인'이라는 것, 독립이라는 건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가며 나를 지켜나가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한 말에 책임지고, 내가 한 행동에 책임져야 하고, 그 와중에 상처받지 않게 나를 돌봐야 하는 그런 상태임이라는 것을.


하지만, 사실 그때 아무것도 못하고, 반항 한번 안 해보고 시간이 흘러버린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많아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은 들진 않지만,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면 내 힘으로 학비도, 생활비도 벌면서 지내보고 싶어요. 


그 말 하나로 성인이 되면, 이라고 마음먹고 꾹 참고 지내왔어요.

어떻게 보면 그 말 하나가 희망고문이었나 싶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저를 걱정해서, 상처받지 않게 하려 했던 아빠의 마음이라 생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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