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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콩 Dec 06. 2023

아빠는 왜 그랬어?

술, 모든 일의 원인은 아니지만

아빠,


날씨가 좀 풀리는 듯하더니 흐리고 비가 오네요. 아직은 동장군이 힘쓰지 못하는가 봐요. 

아니면 동장군이 오려고 날씨를 살짝 달래주는 걸까요.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잔이 떠올라요. 

아빠가 많이 좋아하던 술이요.


아빠는 술을 참 좋아했었죠, 소주도 담금주도, 주종에 상관없이 말이죠. 일이 끝나고 퇴근하시고 나면 언제나 소주 반 병을 큰 잔에 따라서 반주로 드시던 모습이 생각나요. 그런 걸 보면 아빠를 닮았나 봐요.

어릴 땐 술자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사람도 술도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어울릴만한 술이 뭐가 있을까, 제철 식재료가 보이면 맛있는 술과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여름에 땀 흘리고 먹는 시원한 맥주, 한겨울에 얼음장 같은 손과 몸을 녹일 따뜻한 국물과 소주도.


하지만 술은 감정을 과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죠.

즐거울 때 마시면 즐거움이 두 배가 되지만 슬플 때 마시면 한없이 슬퍼지게 만들어요.

그리고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들기도 해요.


아빠에게는 감정을 더 격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밖에서 있던 일들, 화나는 일들이 마음속에 폭탄으로 하나씩 하나씩 쌓이다가 술을 드시면 한꺼번에 터지는 것처럼말이에요. 그게 터지고 나면 가족들은 그 화가 누그러들 때까지 눈치를 보며 기다려야 했어요.


혹시나 아빠가 술이라도 드시고 오시는 날이면 차라리 만취상태로 들어오셔서 바로 잠들기를 바랐어요. 그래야만 조용히 넘어가고 아침 일찍 출근하실 테니까요.


그러지만.. 술을 안 드셨던 날에도 화를 내셨으니 사실은 술이 원인인 건지 아닌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냥 화가 나셨던 건지 술이 더 문제를 만들었던 건지 말이죠.


아빠,

그런 아빠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기억이 끊길 정도로 마시면 어떨 땐 욕을 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던걸 보면요. 그리고 나면 꼭 엄청나게 울었어요.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걸 풀어내려고 했었나 봐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응어리는 그렇게 한다고 풀리는 게 전혀 아니었어요. 제대로 풀지 못한 응어리는 결국 마음속에서 썩어서 곪아 병이 되는 걸 겪고 나서 알았어요.


이젠 슬프거나 기분이 나쁘면 술은 마시지 않아요. 기쁠 때만 먹기로 했거든요.

기쁠 때 배가 되는 건 더 기분 좋은 일이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아빠처럼 되기 싫어요. 술기운에라도 화내고 폭력적인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요.


고마워요.

이렇게라도 가르쳐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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