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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개껍데기 SeaShelly Jul 21. 2021

다이어트 중독이 되어버린 이유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사는 여자아이들

중3 때부터 시작했던 다이어트


최근에 내 옛 다이어리들과 스케줄러를 꺼내 읽으면서 깨달은 건데, 내 다이어트의 역사는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전부터 다이어트를 했을 수도 있다.)


① 중3 다이어리  '올해 목표'에 있는 50kg 찍기     ② 중3 다이어리 2주 다이어트 목표는 52.3kg에서 48kg까지 빼기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163cm의 큰 키를 갖고 있었어서, 중3 때쯤에는 지금의 내 키와 별반 다름없는 164cm 정도였을 것이다. (* TMI : 나는 24살에 운동하면서 갑자기 키가 164.4cm ⇒ 166.1cm로 컸다) 그 키에 52.3kg도 상당히 마른 몸무게인데, 뭘 그리 욕심낸다고 48kg까지 빼고 싶어 했나 모르겠다. 더 어이없는 건 가슴 키우기 목표(?)인데, 미안하지만 지방 모으기와 팔 굽혀 펴기로 가슴이 키워질 리가 없었다.(ㅠㅠ) 왼쪽 연간 목표에 표시된 빨간색 동그라미가 말하다시피, 나는 그 해에 결국 50kg를 찍지 못했고, 이후로도 한 번도 인생에서 앞자리 4의 몸무게를 만나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도

① 고2 때 급식표, 살 뺀다고 저렇게 칼로리를 계산하고 먹을 것들을 동그라미 쳤었다   ② 대학교 입학 직후 내가 "원했던 것들"

고등학교 때는 생물학이랑 수학을 좀 배웠다고 저렇게 1kg를 빼려면 하루에 몇 kcal를 먹고 몇 kcal를 소모해야 하는지를 급식표에 열심히 계산해뒀었다. 1000kcal 먹고 600kcal 운동한다느니, 하여튼 전혀 현실성 없는 목표들이었고 아마 저때도 제대로 못 지켰을 거다. 오른쪽 사진은 입시가 끝나고 갓 대학생이 된 19살의 '내가 원하는 것들'을 적어본 것이다. '행복하고 예쁜 모습 자랑하기', '지방 많은 음식 피하기, 이미 몸에 많음'. 대학교 가서 꾸며라, 대학 가면 살 빠진다, 대학생이 가장 예쁠 때다, 꽃다운 나이다, 이렇게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말들 덕분에 다이어트와 외모관리는 나에게 당연한 압박이었다.


다이어트는 내 습관이 됐다

대학생 때 썼던 다이어리의 주간 계획과 월간 계획

당연히 대학생이 된 나의 다이어리 내용들도 학창 시절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대학생 때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나의 규칙은, 매주 시작에 'DIET', 'STUDY', 'TODO'를 적고 각각 하위 항목으로 일주일 동안 해야 할 목표들을 적는 것이었다. 'DIET' 밑에는 운동/식단/생활습관 이렇게 나누기도 하고, 일주일간 먹을 음식들을 미리 계획해두기도 했다. 이처럼 다이어트 생각을 하는 것은 나에겐 습관이었고, 삶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어느 사주풀이가가 우리 엄마에게 했던 "큰 딸은 다이어트 중독이네"라는 말의 말마따나, 나는 약 10년간 다이어트 중독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당연해져 버린 다이어트


내가 다이어트 중독임을 경고한 신호들이 적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에는 그게 경고임을 인지하지 못했고, 매번 가볍게 넘기거나 그때그때 반박을 하는 식이었던 것 같다.


✽ 신호 ① 지인들이 나와 식사 약속을 잡을 때, "가벼운 걸로 먹을까? 요즘에는 관리 안 하니? 나는 샐러드도 괜찮아!"라는 말을 거의 항상 했었다. 다이어트와 손절(?)한 요즘 아직도 그런 말들을 듣는데, 그만큼 내 친구들에게 나는 '항상 다이어트하는 사람'으로 낙인 되어 있었다.

✽ 신호 ② 전남친에게 "OO이, 너에게 다이어트는 정말로 중요한 이슈구나."라는 말을 자주 들었었다.

✽ 신호 ③ 최근에 시작한 심리상담에서 내가 '상담 전 히스토리'를 빼곡하게 적어갔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적어주신 내용에 외모와 체중 얘기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더군요."라고 말씀하셨다.


최근까지만 해도, 10년째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딱히 문제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에게 '정상'은 52~53kg의 '예쁘고 마른 몸 상태'였고, 그 이상의 몸무게는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살을 당연하게 빼서 정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런 인식을 갖게 된 데는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다이어트 계정들도 한 몫했던 것 같다.


다이어트 인플루언서들은 탄탄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을 매일매일 업로드한다. 매일 헬스장을 가는 사람,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 미라클 모닝 겸 매일 아침 산책을 하는 사람, 밀가루 단식을 하는 사람, 여행에서 과식 후 타이트한 식단을 먹는 사람... 나는 이런 분들을 팔로우하면서 존경해왔고, 동기부여 삼아 "역시 다이어트는 평생의 과제구나, 항상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워 절제해야만 저런 몸상태를 유지할 수 있구나"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나 '저런 몸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한 가정으로 깔린 채 말이다.


몸무게는 자존감이 달린 문제


어찌어찌 살을 빼서 52kg를 달성한들, 내 몸무게는 결국 다시 늘어나서 '비정상'의 상태가 되었다. 정상의 기준을 단순히 52kg (예전에는 48kg)로 맞춘 것도 참 문제지만, 이외의 몸 상태를 꾸준하게 비정상으로 여긴 것도 정말 슬픈 일이다. '살이 쪄도 나, 빠져도 나'를 받아들이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살찐 나의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살로 인한 걱정으로 자존감이 낮아질 때면 자기 회의에 종종 빠지곤 했다.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통통한 내 몸은 절대로 인정해주지도 사랑해주지도 못했었다.


다이어트의 역사는 매번 반복되었는데, 뺐던 살은 천천히 돌아오든 빠르게 돌아오든 똑같이 원상 복귀되었다. (지금의 경우, 바디프로필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보다 8kg 이상이 늘어난 상태다.) 그리고 요요가 오면 의지가 약한  탓을 하게 됐다. 강한 통제력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해도 결국 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나는 실패자로 의지박약으로 전락해버렸고, 자존감은 그럴 때마다 더욱더 떨어졌다. 몸무게는 내 자존감이 달린 문제였기에, 인생에서 필수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내가 진정 왜 다이어트를 하는지는 한 번도 스스로 돌아보지도 못한 채, 나는 다이어트에 내 가치를 강하게 의존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다이어트에서 비롯된 식이장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꼭 등장하는 이야기다. "당신은 사실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어요." 처음에는 이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나는 아름답고 마른 사람들을 존경해왔고, 나의 이상향에는 항상 '마른 몸'이라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루고 싶은 성취는 다이어트이자 관심사는 외적인 아름다움, 여태 노력을 가장 많이 쏟아왔던 분야도 체중감량과 외모관리였기 때문이다.


다이어트가 왜 내 자존감을 높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핵심 원인이 작용했는데, 첫 번째는 마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칭송하는 사회의 문제, 두 번째는 그렇게 사회적으로 외모를 인정받아야만 자존감이 높아지는 개인의 문제다. 한 발짝 더 나아가 항상 인정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강박적인 사고의 문제로 인해, 나는 결국 폭식증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세 가지 원인을 다시 정리하자면, 내 다이어트 중독은 (1) 사회의 문제 (2) 외모 강박의 문제 (3) 불안과 통제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의 나에게는, 다이어트가 자존감을 높이는 당연한 해결책이었고 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나뿐만 아니라 세상 천지만지 SNS, 광고, 커뮤니티에 도배되어 있고, 결국 사람들의 뇌 속에 각인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의 한 가지 축인 자기효능감*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의 힘으로 어떤 성취를 이뤄냈을 때' 생긴다고 한다. 물론 누군가는 '건강 챙기기'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서, 식단과 운동 목표를 세운 다음 이를 달성하는 데 성공해서 자기효능감과 자존감을 얻었을 수도 있다. 나도 최근에는 활력 있는 삶을 위해 스스로에게 '주 2회 헬스, 주 2회 플라잉 요가'라는 작은 약속을 했고, 이것을 지키고 나면 성취감에 자존감이 높아지곤 한다.


하지만 예전의 나에게 유의미했던 성공적인 다이어트의 보상은, 마른 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자랑했을 때 달리는 부러움의 댓글들, 어떤 옷을 입어도 뚱뚱해 보이지는 않겠다는 심리적 안정감, 할 일도 잘하고 자기관리도 챙기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타인의 평가였다. 대신에 '유지'를 위해 하루라도 운동을 게을리하면 안 됐고, 다이어트가 끝나도 여전히 샐러드와 닭가슴살에 의존해야 하고, 누군가와 식사 약속을 잡으려면 그 효과를 상쇄하는 식단관리를 해야 했다.


정신적으로 쏟는 노력 대비 돌아오는 보상의 크기가 크지 않자 나는 허기를 느꼈다. 원하던 대로 남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인정해주는데 나는 왜 여전히 허기져 있을까. 식이장애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갖고 있는 내적 허기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고 나서야, 다이어트 강박은 마음속에 있는 허기의 단편적인 표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까지 여러 책과 팟캐스트를 접하고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면서 스스로 고민과 시행착오를 반복했었고, 이제서야 조금은 괜찮음의 단계에 이르게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사회가 개인에게 넣는 다이어트의 압박들과 그 흐름에 복종하여 내가 했던 각종 노력들, 그리고 어떻게 바디프로필을 준비했고 폭식증까지 이어져 회복하게 되었는지, 앞으로 이어지는 글들에서 천천히 이야기해보고 싶다.


인용

* 윤홍균, 자존감 수업」, 심플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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