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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개껍데기 SeaShelly Jul 27. 2021

인스타그램의 다이어트 세계

다이어트 중독이 되어버린 이유 #2

https://brunch.co.kr/@seashelly/15


인스타그램의 다이어트 커뮤니티


지난 글에서 잠깐 인스타그램의 다이어트 인플루언서들을 언급했었다. 나도 약 2년째 '다이어트 식단 계정'을 관리하고 있는데, 이 계정은 말 그대로 내 모든 다이어트 기록들을 올려두는 곳이다. 처음에는 다이어트 동기부여의 목적으로, '공개적인 곳에 내 식단을 계속 업로드하면', '주 5회 운동하겠다고 다짐하고 인증샷을 찍으면' 살이 빠질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했었다. #식단일기 #다이어터 등의 태그를 달다 보니 비슷한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맞팔로우를 하게 되었고, 인스타그램의 '다이어터 커뮤니티'에 자연스럽게 입문하게 되었다.


내가 접했던 그 커뮤니티 사람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몇몇 유명한 다이어트 인플루언서들다이어트 업체들의 마케팅 채널을 팔로우한다. 식품 관련 업체로 말하자면 유명한 샐러드 가게, 저칼로리 아이스크림과 디저트, 각종 닭가슴살과 다이어트 도시락 업체 등이 있을 것이고, 그 외에는 바디프로필 스튜디오, 요가복 브랜드, 홈트 유튜버 계정 등이 있을 것이다. 남들이 팔로우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팔로우하다 보면 비슷한 계정들을 추천받아 더 많은 팔로우를 하게 되고, 결국 어느 커뮤니티가 그러하듯, 다이어터들의 필수 소식을 접하면서 그들과 생각이 동기화된다.



다이어트 계정을 한창 열심히 운영할 때는, 친한 몇몇 '인친들'과 서로 좋아요를 눌러주며 댓글로 다이어트 응원들을 주고받았다.

'역시 땡땡님 식단은... 같은 닭가슴살도 어쩜 저렇게 예쁘게 드셔!! 남은 바프기간도 화이링♡'

이런 끈끈한 전우애가 적극적으로 발전하면 이벤트성 '다이어트 간식 나눔'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오프라인 '다이어트 맛집 뿌시기 모임'이 탄생하기도 한다. 나는 내 본캐 인맥도 챙기기 바빠 이런 활발한 인연은 끝내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내가 갑자기 잠수를 타든, 요요가 와서 다시 감량을 다짐하며 돌아오든, 꾸준하게 내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고마운 분들도 계셨다.


다이어트 계정에 매일 접속해서 내 하루의 식단과 운동일기를 작성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남들의 다이어트 소식까지도 그만큼 자주 보게 된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는 온통 다이어트 식품 업체들의 댓글 이벤트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인친들의 다이어트 식단, 바디프로필 사진과 개인 눈바디 사진의 완벽한 11자 복근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모두가 다이어트를 하고 외모 관리를 하는 세계였고, 나는 이 세계가 외부 세계와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일관된 콘텐츠를 접하다 보니 다이어트를 대하는 나의 시각이 점점 더 객관화가 안 되기 시작했다.


세상 모두가 그렇게 먹고 다니는 줄 알았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는 세상의 모든 복부는 납작하고 딴딴하다. 사람들은 끼니로 주로 닭고야 (닭가슴살, 고구마, 야채)를 먹거나 샐러드, 오트밀, 그릭요거트를 먹는다. 빵이 먹고 싶을 때는 #빵모닝 태그와 함께 아침식사로 저칼로리 빵을 즐기는데, 그 이유는 그나마 밤보다는 아침에 먹는 것이 살이 덜 찌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레시피는 진화를 거듭하고 거듭해서, 아마 세상의 어떤 음식이든 다이어트 ver. 레시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쌀밥 대신 곤약밥, 설탕 대신 알룰로오스, 면 대신 두부면, 매운 소스 대신 0kcal 스리라차 소스로 대체하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아는 '기본 공식'과도 같다.



나는 모두가 이렇게 먹고사는 줄 알았다. 내 3월의 어느 일주일도 대충 이렇게 흘러갔다.

2021년 3월 19일 (금)
 • 운동 : 아침 공복 헬스
 • 아침 : 요거트볼 (그릭요거트, 딸기, 수제 그래놀라)
 • 간식 : 빵 (망넛이네 몽블랑 찹싸루니)
 • 저녁 : 케일스무디, 닭가슴살, 초코 크럼블

2021년 3월 20일 (토)
 • 아침 : 요거트볼 (그릭요거트, 프로틴 시리얼, 사과)
 • 운동 : 에어리얼 후프 수업
 • 저녁 : 샐러드 (크리스피프레시 치킨플레이트 샐러드)

2021년 3월 21일 (일)
 • 운동 : 아침 공복 헬스
 • 아침 : 케일스무디
 • 저녁 : 외식 및 술 (베이컨 크림 파스타, 살치살 테이크, 칠리새우, 와인, 증류소주)

2021년 3월 22일 (월)
 • 아침 : 천혜향 1개
 • 점심 : 요거트볼 (그릭요거트, 그래놀라, 프로틴 시리얼, 딸기, 프로틴바)
 • 저녁 : 샐러드 (주니아 퀘사디아샐러드)

2021년 3월 23일 (화)
 • 운동 : 아침 공복 유산소
 • 점심 : 수제버거 (버터핑거팬케이크 클래식 치즈버거)
 • 저녁 : 요거트볼 (그릭요거트, 프로틴 시리얼, 딸기, 블루베리)

2021년 3월 24일 (수)
 • 점심 : 요거트볼 (그릭요거트, 프로틴 시리얼, 딸기, 블루베리)
 • 저녁 : 케일스무디
 • 운동 : 아크로바틱 수업

2021년 3월 25일 (목)
 • 운동 : 아침 공복 헬스
 • 아침 : 요거트볼 (그릭요거트, 그래놀라, 딸기, 블루베리, 천혜향)
 • 점심 : 케일스무디, 오트밀
 • 저녁 : 부챗살 스테이크 덮밥
 • 야식 : 무알코올 맥주, 동생의 떡볶이 뺏어먹기, 빵, 쿠키

대충 요약을 하자면,

 •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운동을 했고

 •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그릭요거트를 먹었으며

 • 일주일 동안 쌀밥을 먹은 끼니는 '부챗살 스테이크 덮밥' 딱 한 번뿐이다.


빵을 너무 좋아해서 웬만한 탄수화물은 빵과 그래놀라로 해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많은 다이어터들이 자칭 '빵순이', '빵돌이'다. 좀 유의미하게 봐야 할 증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만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빵을 싫어하던 극구의 한식파였다. 예를 들자면, 학창 시절에는 성심당 튀김소보로가 느끼해서 반 개도 혼자서 다 먹지 못했다. 부모님이 빵을 사 오시면 식탁에 며칠간 방치되다가 냉장고로 향했고, 나는 컵라면은 두 개를 먹어도 피자는 절대 세 조각 이상 먹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대학에 와서 제대로 다이어트를 하며 입맛이 어느 순간 확 변하더니, 지금은 웬만하면 밥 대신 빵을 선택하는 심각한 빵순이가 되었다. 성심당 튀김소보로 두 개쯤은 충분히 클리어 가능하고, 피자는 (내 최애 음식이 되어) 한 번에 5~6조각씩이나 먹을 수 있으며, 라면은 싫어해서 이제 아예 안 먹는다. 이런 스토리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정말 많이 들어볼 수 있는데, 아마 음식을 제한하면서 온 갈증이, 빠르게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밀가루 덩어리의 갈증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이런  식습관에서 나는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갑자기  식단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면 '너무 많이 먹어서 인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올해 4 말쯤, 폭식증 치료를 위해 방문한 정신과 한의원에서 처음으로  식습관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폭식증 치료 과정 다이어트를 완전히 중단하고 일반식을 포만감 있게 먹으며, '  잘못된 보상회로' 고치고 음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당분간은   일반식을 먹어야만 빠르게 치료할  있다는 한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일주일간 다이어트 걱정을 내려놓은 ,  나름의 '일반식' 수행해봤다. 아침으로는 오트밀과 초콜릿과 두유를 섞어서 구운 '초코 베이크드 오트밀' 먹고, 점심에는 집에서 수제버거 세트를 배달시켜서 먹고, 저녁에는 친한 언니와 약속이 있어서 샐러드 맛집에 갔다. 아침과 점심에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배부르게 먹었고, 저녁에는 조금 가볍게 맛있는 샐러드를 먹은 건데,  정도면 일반식이라고   있는  아닌가?


이런 식으로 먹은 뒤 한의원에 가서 선생님께 일주일 식단을 보고했다. 나의 식단을 자랑스럽게 읊고 있는데, 선생님 표정이 안 좋게 굳어지시는 것이었다.

"OO님... 오트밀이 일반식인가요?"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당황해서

"아, 선생님 저 오트밀 되게 배부르게 먹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잠시 눈을 감으시더니,

"지금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음식의 종류 말이에요. 남들이 먹는 일반식을 드셔야죠."라고 이야기하셨다.

나는 벙쪘다. 나는 남들 먹는 대로 먹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자취생들은 보통 이렇게 먹지 않나, 내 친구들도 이렇게 먹고사는 것 같던데.

몇 초 고민하다가 던진 "... 남들은 뭘 먹는데요?"라는 질문에 선생님은

"남들은 한식 먹어요, 한식. 밥이랑 반찬이랑 국물이요."라고 강하게 대답하셨다.


나는 여기에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 제가 한식을 못 먹는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 저는 자취를 하기 때문에 그런 반찬이나 국을 해먹을 여유가 없어요. 둘째, 제가 양파와 마늘을 소화를 잘 못 시켜서 한식을 어느 순간 기피하게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빵이 너무 좋아져 버렸고, 국물은 너무 짜고 밥은 너무 더부룩하고, 한 끼 만족도로 치면 양식이 월등히 높으니까..."


선생님의 말씀은 단호했다. 반찬과 국은 반찬가게에서 사 오세요. 양파와 마늘은 걸러서 드시고요, 앞으로 아침에는 무조건 한식을 먹고 빵이 정 먹고 싶으시면 융통성 있게 점심이나 저녁에 먹어봐요. 나는 쫄아서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몇 주간 강제 아침 한식 먹기 습관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아침 한식 먹기의 효과는 아주 빠르고 좋았다. 아침식사의 포만감이 점심때까지 오래 남았고, 아침에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먹으니 입맛이 딴 데로 튀지 않았다. 한식 먹기를 실천한 지 2주 만에 나는 간식 폭식이 금방 줄어들었고, 점차 음식과 과식에 대한 욕구도 사그라들게 되었다.


한식 먹기 챌린지


2021.05.12 일기
오늘 한의원에 가서 최근 일주일 식단을 말씀드렸다가 무진장 혼났다. 그래서 저녁은 제육볶음을 시켜서 (양파 빼고) 배부르게 먹었다.
문제는 식사 후에 만난 오랜만의 포만감의 느낌이,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지던 것이었다.
계속해서 더부룩함에 살찔까 불안해지려는 마음이 들어서, 밤에 집에서 나와 노들섬까지 1시간 반을 산책했다. 결과적으로 걸으며 기분도 몸도 훨씬 상쾌해졌지만, 다이어트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아직 멀었구나, 씁쓸함이 느껴졌다.
2021.05.16 일기
연속 3일 포만감 있는 한식 아침 먹기 연습 성공...^^ (차돌 된장, 시금치, 두부조림, 제육, 콩나물)
매번 지나치면서 음식점인 줄로만 알았던 동네 가게가, 알고 보니 대형 반찬가게였다!!! 가까운 곳에 반찬가게 있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순조로운 아침 한식 먹기가 가능해졌다.
2021.05.25 일기
빵모닝에서 벗어난 한식모닝 순조롭게 실천 중! 처음 한식 먹기를 할 때는 식사 후 왠지 모르게 달달한 후식이 당겼는데, 최근에는 한식에 적응했는지 그런 욕구가 좀 덜 해진 것 같다. 아침 입맛이 하루 종일의 입맛을 결정한다는 것을 어디서 읽었던 것 같은데,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아직까지는 점심에는 샌드위치 같은 것이 당긴다.
2021.06.07 일기
포만감 있는 한식 먹기 n일째 성공 중 (잡곡밥, 불고기, 계란말이, 양념 콩나물)


여전히 스트레스에 의한 충동적 과식이나 간식 습성은 조금 남아있지만, 끼니를 챙겨 먹고도 만족감이 부족해서 간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먹고 또 먹는 폭식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폭식을 줄일 수 있었던 데는 아침 한식 먹기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노력과 해결의 과정이 있었지만, 그중 신체적인 음식 갈증이 줄어든 것은 한식 먹기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나는 현재까지 약 두 달 넘게 아침 한식 먹기를 실천하는 중이고, 좋아하는 반찬집을 골라 장 보고 오는 재미까지 들려, 매일 아침 어떻게 반찬 조합을 꾸려 먹을지 행복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나의 최근 아침식사들


한식 덕분에 나는 어느 정도 음식과 화해를 하게 되었다. 화해라는 것은 음식을 너무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상태를 의미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섭식장애 환자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사고방식은, 바로 음식에 대한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오간다는 것이다. 음식이 다이어트의 영역에 있을 때는 본인의 뛰어난 통제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반대쪽 영역에 있을 때는 억눌린 허기를 폭발시킬 수 있는 보상의 수단, 동시에 '살찜'으로 보답해야 하는 끔찍한 형벌로 여겨진다. 이러한 가치관은 슬프게도 인스타그램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평범한 가정식 한 끼가 잘 등장하지 않는다. SNS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들은 주로 #맛집스타그램 혹은 정갈하게 차려진 #다이어트식단이고, 소소하고 평범한 한 끼는 굳이 찍히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그만큼 우리가 귀중하게 여기는 음식은 미적 혹은 시각적 자극을 주는 특별함이 있거나, 나의 '자기관리'라는 신념과 의지를 대신 표현해주는, 유용함이 있는 것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음식들을 취했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어떤 가치를 선물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식사장애 환자들의 폭식과 절식의 반복은,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 싶은,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이 뽐내고 자랑하듯, 그래서 계속 먹거나 안 먹거나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마음속 깊은 허기를 위한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 본질적인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 그런 슬픈 악순환의 상태인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 참고하면 좋은 영상

아무리 빼도 당신이 다시 살찌는 근본적인 원인 [구독자 질의문답 3] - 다니엘 팟캐스트

 - 1분 27초, 한식 식단과 음식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

https://youtu.be/kHSG2EH8Ozc?t=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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