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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락교 Nov 02. 2020

전역과 저녁

인생에 관하여


전역과 저녁은 발음이 동일하다.  그러나 발음만 동일할 뿐 사실, 이 두 단어는 전혀 연결점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둘에서 어떤 연결점을 발견하였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하나의 글을 만들어보았다. 이 글이 군인과 직장인에게 어떤 영감을 주길 소망한다.



 (Episode 1)

전역 당일 아침. 나는 평소와 같이 눈을 떴다. 분명 전날 밤에는 내일 아침 찾아올 기쁨과 알 수 없는 묘한 설렘에 휩싸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하다. 전혀 기쁘지가 않다. 아니 기쁘다. 그러나 한없이 기쁘기보다는 ‘오늘도 눈을 떴구나’라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든다. 담담하다 못해 평범하다. 집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고 버스에 올랐다. 집으로 가는 길, 주위 풍경은 평범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로 일상적이다. 엄청난 해방감을 만끽하며 세상이 달라 보일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낯이 익다. 입대 전에 상상한 전역 당일의 기쁨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집 앞에 다다르자 이제 해방이라는 벅찬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동생은 학교에, 부모님은 회사에 있는 탓에 아무도 없는 집. 문을 열고 들어와서 홀로 환호를 지르고는 이내 짐을 풀고 내 방을 정리한다. 이 해방감을 알리기 위해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SNS에 자랑하면서 축하를 받는다. 방 정리를 마치자 기다렸다는 양 짙은 잿빛의 적막한 공기가 내 어깨 위에 두텁게 내려앉는다. 견디기 힘들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크게 틀어도 이 공간의 낯섦을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상상했는가. 전역만을 바라보았고, 보이지 않는 철창 속에서 내 시간을 희생했는데 왜 기쁘지 않지. 미칠 듯한 환희가 나를 휘감아야 할 텐데 어째서 마치 어제도 이 공간에서 일상을 보낸 것 같은가. 친구들의 전화와 댓글도 이젠 무덤덤하다. 차라리 내가 전역했다는 사실을 올리지 말걸. 가벼운 후회가 찾아온다. 일일이 답글을 달기도 귀찮아졌다. 기분을 전환하고자 씻어보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어딘가 어색하다. 물건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기분이다. 순간, 내 집에서조차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든다. 씁쓸하다. 군대에서의 시간을 모두 돌려받고 싶다. 억울함이 찾아온다.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피곤하고 잠이 쏟아진다. 그래도 뭔가 아까운 마음에 TV를 틀고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을 검색한다. 그마저도 별 감흥이 없다. 순간. 갑자기 불안해진다. 내일부터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막막해진다. 책을 펴야 하나, 친구를 만나야 하나, 아니면 놀아버릴까. 달력을 보고 군 생활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일주일을 나에게 선물하기로 한다. 이 시간 동안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싶은 의심이 불안과 함께 찾아왔다. 너무 불안하다. 차라리 군대가 편했었던 걸까. 그러나 이내 이 생각을 몰아내기로 한다.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내게 억지로라도 일과와 일상을 지정해주었으면 싶다. 괜찮은 급여를 준다면 이전의 생활도 괜찮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별생각이 다 든다. 군 생활도 견뎌냈는데 뭔들 못하겠냐고 말했던 어른들의 얼굴이 아니꼽게 떠오르며 반발심이 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도 가질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그냥 20대 초반의 군필 남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눈꺼풀이 나도 모르게 감겨,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엌에서 들려오는 칼질 소리와 음식 냄새에 눈을 떴다. 벌써 저녁이다. 부모님과 동생은 그들의 일상대로 자연스레 씻고, 빨래를 널고, 방에서 할 일을 하고 있다.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소식에 나도 식탁에 앉는다. 전역을 축하한다며 온 가족이 난리다. 나는 별로 감흥이 없는데 왜 가족들이 더 신나 있는 것일까. 이제야 전역이 실감 난다.      




(Episode 2)

시간이 흘러 직장을 잡게 되었다. 이는 다분히 취직에 대한 주위의 시선과 특정 나이에 요구하는 사회적 기대 등의 압박감에 근거한 행위였다. 첫 출근의 설렘도 잠시,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는데 너무나도 낯선 용어와 복잡해 보이는 업무 절차에 심적으로 부담을 느낀다. 물론 이 또한 몇 달 지나면 손에 익어 수월히 처리할 일들이지만 지금 상황은 뭐 그렇다. 잘할 수 있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하루하루 시간을 보낸다.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일 잘한다는 칭찬과 인정도 받았고, 맡은 일에서 큰 실수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성과도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이건 나에게 맞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밀려온다. 남의 옷과 신발을 걸치고 있는 느낌.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나는 출근과 함께 컴퓨터를 켜고 간단히 부서 회의를 하고, 늘 그렇듯 메일을 확인하고, 엑셀을 켠다. 쳇바퀴 돈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새로운 거래처와 고객을 대하지만 새롭지가 않다.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것 같은데 일을 처리 방식이나 형식은 입사했을 당시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일이 손에 익었다는 것뿐. 내가 전문가가 되고 있다는 확신도 없다. 이제는 보고서를 갖은 표와 그래프를 사용하여 간결한 문체로 세련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예산을 썼다는 사실을 증빙하기 위한 목적, 어떤 일을 잘 마감했다는 확인, 이 프로젝트가 회사의 발전에 이바지한 바를 알려주는 정도. 보고서는 완성과 동시에 그 누구도 읽지 않을 쓰레기가 되어 전자시스템과 문서창고에 처박힌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나는 무엇을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는가 한탄한다. 월급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친다. 그런데 상사와 동료들은 생각이 없는 것인지 이런 회사생활에 목숨을 걸고 일한다. 누가 승진했냐는 둥, 보너스가 몇 프로 나왔냐는 둥.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젠 돈을 많이 주지 않아도 좋으니 나의 일을 하고 싶다. 이제야 왜 사람들이 퇴사를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 과거 나는 퇴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직 부적응자나 성격 결함이 있는 이들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지금 보니 그들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 일을 하고자 뛰쳐나온 도전정신 그 자체였다. 과연 나는 그들처럼 할 수 있을까. 내 나이에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잠시. 이내 단념하고 밀린 일을 바쁘게 처리한다. 정신이 팔려 일하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다. 퇴근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선다.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선선하고 건조한 공기와 오렌지빛 노을이 나를 맞는다. 새들이 무리 지어 공중을 유유히 날아다니고, 어린아이와 어머니는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듯. 해맑고 다정하다. 이 공기와 느낌. 어릴 때 밖에서 뛰어놀던 때가 생각난다. 굳이 빨리 걷고 싶지 않다. 한발 한발 아주 천천히, 구두를 땅에 끌 듯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차라리 이게 군 복무였다면, 전역이라도 기다릴 텐데. 이런 삶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려줄 거대한 알람과 같은 전역이 기다린다면, 뛰쳐나올 용기나 결심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을 텐데.      



(Episode 3)

어느덧 내 나이도 꽤 지긋해졌다. 작년에 퇴직한 이후, 자유롭게 사용할 시간이 많아졌다. 의무에서도 해방되었기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육체는 쇠하여졌고, 감각은 무뎌져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보아도, 무엇을 들어도, 무엇을 입어도 내 안에 남아있는 법이 없으며, 만족스럽지도 않다. 나는 주어진 많은 시간을 부쩍 과거를 추억하고 후회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자녀들의 출생과 결혼, 친구들의 죽음, 젊은 날의 여행 등등. 그중에서도 군 복무 때와 직장 시절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는 기억도 없다.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전역과 저녁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때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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