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러니 남들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사회에서 태어난 이상 대인관계는 숙명과 같다. 좋든 싫든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얼굴을 맞대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문제는 나와 결이 같고, 선하고도 너그러운 사람과 맺는 친밀한 관계란 몇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남 정도의 관계를 벗어나지 않으나, 몇몇은 불편하며, 진저리가 나고, 말도 섞기 싫은 관계가 있다. 무미건조한 타인은 사실 그저 그런 관계로 머물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내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는 부류이다. 뒤에서 수군거리고, 모함하며, 이간질하고, 시기 질투하며 나를 번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자들. 그들을 피하고 싶어도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를 가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머물러야 하는 이상 피하기 쉽지 않다.
근데, 인간관계의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맘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내 앞에 없음에도, 그에 대한 미움을 집까지 가져와서 고민할 때이다. 혹은 특정인이 나를 실제로 미워하거나, 뒤에서 모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는 그를 향한 극도의 적개심이 들 때이다. 이럴 때 주위에서는 마음 수양을 해라, 잊어라, 신경 쓰지 말아라, 다른 일에 몰두해라 따위의 조언을 하지만, 효과는 없다. 내 마음이 그 사람을 향해 '자동으로' 미워하는 감정을 형성하고, 떠올리기 싫어도 그의 얼굴과 행동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의 감정은 의도적이기보다 '자동적'이다. 흡사 스팸 메일과 같다. 원치 않으나 찾아온다.
나의 관심사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를 노골적으로 괴롭히거나 갈등하는 상황이 아니라, 특정인이 내 앞에 '없을 때'에 이루어지는 번민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런 답을 던지고 싶다. "내가 그러니 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누군가 당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을 두고 온종일 뒷담화를 일상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넘어지기만을 기다리며 낄낄거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당신이 누군가를 두고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용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용서하지 않고 누군가를 계속해서 미워한다면, 결국에는 나를 남들이 미워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듯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원래 누군가를 한 번 미워하면 용서하기가 참 어려워, 반대로 누군가에게 한 번 미운털이 박히면 용서받을 수가 없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는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나는 나의 작은 실수에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과도한 노력을 들이며, 눈치 보고, 발버둥 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며 평가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람은, 은연중에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 일상인 사람은, 은연중에 다른 사람도 나를 두고 매일 뒷담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리고 미운 사람은, 은연중에 다른 사람도 나의 단점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민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선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악한 습성은 모두 버려야만 한다. 버릴 수 없다면, 선한 생각과 행위를 더욱 많이 해야만 한다. 마치 오염된 물에 깨끗한 물을 부어 정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을 평가하고, 뒤에서 험담하며, 단점과 허물을 찾아내고, 시기 질투하며, 구설수를 조장하고, 끝없이 미워하는 그 습성을 모두 폐기하라. 그리고 타인을 나의 시선에서 재단하는 데 들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타인의 실수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허물은 덮어주며, 어려운 이웃을 도울 방법을 찾고, 상처 입은 동료의 아픔을 들어주며, 인간이란 선하다고 믿어버리고,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의 장점을 끝없이 탐색하고 탐색하라. 그러면 내가 그러기에 남들도 나를 포함한 타인을 그렇게 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정 일에 몰두하느라 너무 바쁜 사람은 자신이 구설수에 올랐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할 때가 있다. 누군가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고, 너무 바빠서 일 말고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 없을 때 말이다. 쉬는 날에도 일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은 어느 정도 삶에서 여유가 찾아오면, 그때 구설수가 돌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이를 다음처럼 해석하고 싶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머릿속이 일로 복잡해서 그 이야기를 못 들은 것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느끼지 못한 것이다. "남들도 다 바쁘게 사느라, 남한태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어. 다 자기 일하면서 사는 거지."
소위 아저씨나 아줌마가 되었다는 것을 언제 알 수 있느냐면, 옷차림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될 때일 것이다. 젊어서는 사람 많은 곳에 가려면 한껏 꾸며 입어야 했지만, 나이가 들면 동네 정도야 잠옷 차림으로, 더 심각하게는 백화점도 후줄근하게 가는 배짱이 생겨난다. 나이가 들어서 옷에 대한 물욕이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뻔뻔해진 것일까?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남들이야 어떻게 입고 다니던지 나야 신경 안 쓰지. 너무 특이하게 입었으면 잠깐 시선이 가는 정도? 남들이 어떻게 입든 관심 없어. 남들도 비슷할 걸? 내가 어떻게 입고 다니든 관심 없을 거야.'
한 인간은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그 양식대로 타인과 관계한다. 자신이 세상을 보는 법대로 남들도 세상을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취향이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려 깊은 태도로 타인을 관찰하고, 그들의 생각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계와 타인을 향하던 나의 내면적 시선이 이제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남들보다는 내가 인생의 기준으로 서고자 한다.
즉,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그래야만, 타인도 날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하고 바르지 않게 살면 타인의 시선에 끌려다니고 매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