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이전에 인간으로 자신을 실현하라
인간이라면 나 자신의 성장을 바라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길 소망한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뭉뚱그려 자아실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가지 수상한 점은 자아실현이 언제부터 직업선택이나 커리어개발과 동일한 표현이 되었냐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꿈과 목표를 두고 '나의 꿈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야!'라거나, 더 심하게는 '나의 꿈은 A 기업의 마케팅부서에서 **업무를 맡는 것이야!'라고 겁 없이 말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노량진으로 가거나, 취업을 위해 의도된 동아리, 대외활동, 인턴, 공모전 등에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자아실현의 본래적 의미가 아니다. 직업과 밀착되어 있는 자아실현의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가 본격화되면서 국가와 기업이 자신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고안해 낸 인재 개념에 불과하다.
자아실현은 문자 그대로만 보면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아란 실현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마치 씨앗처럼.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실현한다는 것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자아에 대한 서양의 관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자아실현이라는 개념은 서구 유럽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그 뿌리는 늘 그렇듯 고대 그리스에 두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바라보던 인간이란 실현되어야 할 존재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그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에게는 실현되어야 할 바람직한 상태가 있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인간은 '가치와 미덕'을 진정으로 깨닫고 실천해야 하는 이성적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용기라는 가치를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 끝없는 질문을 통해 그가 실제로는 용기라는 가치를 모르고 있었음을 것을 깨닫게 한다. 한 인간이 용기에 대해서 진정으로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관습적으로 행해져온 군인의 생활양식에서 벗어나 용기의 본질을 사유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실천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자아는 '스스로 사유하고 깨닫고 실천하는 이성적 존재'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파악하며 현실의 실체는 그림자에 불과하니 보이지 않는 이성의 영역인 '이데아'를 추구하며 살 것을 주장한다. 플라톤에게 있어 자아란 이데아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끝없이 사유하는 정신적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학에 따르면 인간 삶의 목적은 이성이 탁월하게 실현되는 관조하는 일에 있다.
쉽게 말하면,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저 현실에 주어진 대로 관습대로, 욕구에 충실해서 살기보다는 영원한 가치와 의미(이성)를 추구하고 깨달으며 살라는 것이다. 즉, 바르고 선한 상태로 자신을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자아 실현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태어날 당시의 자아는 실현되지 않고, 욕구와 본능의 무질서함에 파뭍혀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대적 사유는 18-19세기에 들면서 신인본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수용된다. 그들에게 있어 자아는 마찬가지로 인간성의 실현과 다르지 않았다. 이들이 보기에 현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나 그들은 자아를 충실하게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상가들은 인간의 자아를 두고 동물적 자아, 사회적 자아, 도덕적 자아로 구분하였다. 물론, 이 구분은 위계성을 지니고 있었다. 즉, 자신의 본능에 이끌려 타인을 수단으로 삼고 이기적으로 행위하는 '동물적 자아', 법이 무서워서 강제적으로 규정된 사안들만을 충실히 지키는 '사회적 자아',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라도 타인을 존엄한 존재로 파악하면서 포용과 공정함을 자발적으로 실천하려는 '도덕적 자아'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실현해야 할 최종적 자아는 '도덕적 자아'이다.
한 마디로, 자아실현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 인간성에는 공감능력, 재능,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힘(이성), 미덕, 도덕성, 창의성, 아름다움을 감수하는 능력 등이 포함되어 있다. 즉,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총제적 힘을 참되고 선한 방향으로 최대한 길러내는 일인 것이다.
이렇듯 자아실현은 사실상 구체적인 직업이나 직무와는 별개로 논의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한 인간은 자신의 직업이나 신분에 관계 없이 인간이 되어야 한다.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그 힘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곧 자아실현을 의미한다. 더 단순하게 현대적으로 말한다면, "전문성보다는 인성이 먼저다"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자아실현의 본질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면에 주어진 인간적 힘은 특정 직업군(이를테면 경찰관)에 요구되는 역량 기준에 한정될 수 없는 속성을 띠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의성은 기술공학자의 창의성과 일치하지 않으며, 인간의 공감능력은 은행원의 공감능력과 일치하지 않으며, 인간의 정직성은 관료의 청렴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자는 전자의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직업으로서의 자아실현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맞는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하고,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놓고 본다면 목을 맬 정도까지는 목표는 아니다.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고, 방향을 전환할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선망하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내달리는 것은 광기라고 말할 수 있다. 경찰차를 타고 다니는 오늘날의 경찰관이라는 직업은 역사적 산물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마케팅 전문가라는 것도 미디어의 발달 이후에나 정교화된 산물이다. 이전에는 없었던 직업들이다. 문명 아래 모든 직업은 가변적이며,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또 새롭게 탄생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선망하고 있으며, 그것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일조차도 과거에는 없었던 일일 수 있으며, 미래에는 필요 없을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성으로서의 자아실현만큼은 끝까지 밀고 나가야만 한다. 인간은 직업이 있기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며, 직업이 사라지더라도 당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인간으로서 자아를 실현해야만 한다. 즉, 너그러움, 배려, 정직함, 정의, 공정, 평등, 비판능력, 낭만, 사랑이라는 인간의 목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직업과 완전히 별개의 일로서 진행되는가? 아니다. 인간의 삶은 생각보다 인간 관계에서 큰 만족을 얻는다. 직업생활에서조차 어떤 일을 처리해나가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일하는 지가 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그렇기에 인간으로서 갖출 수 있는 교양과 매력을 추구해야만 한다.
추가로, 어떤 직업적 영역에서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은 주로 도덕성에서 무너진다. 그들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비리, 횡령, 성추문 등을 일으키며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고, 공동체에 위협을 가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행한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점은, 그들은 직업적으로 탁월하게 자아를 실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보통의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높은 자리와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자아실현인가? 아니면, 탐욕의 실현인가? 그들은 너무도 성공적으로 직업에서 자아실현을 해냄으로서 인간으로 자신을 실현할 기회를 포기하였다.
인간성의 실현으로서의 자아실현을 포기한 대가는 당장 찾아오지 않는다. 직업적으로 자아실현을 탁월하게 해낸 그 시점에서 가혹하게 찾아온다. 우주는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에 임무를 던져준다. '고결한 인간으로 자신을 실현해낼 것' 그것은 마치 주인이 일꾼에게 부과한 업무와도 같다. 여행을 떠난 주인이 집으로 돌아와 일꾼이 일을 충실히 해냈는지 시험을 치룬다. 높은 자리와 명예를 주고, 부하들을 다스릴 권력을 주고, 그가 지나갈 곳에 금화 몇 점을 몰래 놓아둔다. 고결한 인간은 그것에 흔들리지 않지만, 그것이 자신에 대한 시험인지를 모르는 직업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지위와 능력을 맹신하고 남용하기 시작한다. 시험을 끝낸 주인은 고결한 인간에게는 인간에 걸맞는 삶을 선물하며 자유를 선사하고, 고결함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은 자리에서 끌어내려 노예에 걸맞는 속박을 선사한다. 이 점에서 자아실현은 "강요된 자유"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는 당신이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파악하는지를 보여준다. 당신이 실현해야 할 자아란 이기적 욕구와 욕망의 집합체인가? 아니면 고결하며 존엄한 도덕적 힘인가? 자아가 실현해야 할 가능성의 대상이라면, 당신은 어떤 가능성에 무게를 두겠는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