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락교 Nov 15. 2020

동등한 관계

그 어떤 관계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드는 관계

'동등한 관계'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어떤 위계질서에서 서로 비슷한 위치에 서 있는 그 무엇? 안타깝게도 그것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깨어지기 쉽다. 왜냐하면 동등한 관계란 위계질서라는 개념이 감히 들어올 수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과거, 나는 동등한 관계를 '동급' 또는 '같은 레벨'로 이해한 적이 있었다. 일례로, 과거 친하고 편한 어떤 형에게 친구에게 하는 식으로 대한 적이 있었고, 그 형은 심하게 불쾌감을 표한 적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그 형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에 나와 동년배인 친구조차 내게 지독한 불쾌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두고 큰 충격을 받았고,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내가 찾은 답은 '친구'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었다. 나는 친구, 동등한 관계, 그리고 편한 관계를 '위계와 힘의 논리'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은 나랑 동급이니까 조심할 것도 없이 스스럼없이 대해도 되겠지." 이게 문제였던 것이었다. 즉, 나는 형과 친구를 나랑 같은 위치에 놓인 사람, 나와 같은 계급, 긴장할 필요가 없는 관계, 굳이 예의 따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 상사도 부하도 아닌 같은 관계 따위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타인은 내가 상대를 파악하는 그 방식과 묘한 뉘앙스를 귀신 같이 알아챘다. 그리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나는 여기서 깨달았다. 누군가를 마음속에서라도 만만하게 생각하거나, 미워하거나 무시하면 안 되겠구나. 그 마음은 결국 티가 나게 되어있구나. 그래서 옛말에 생각까지도 조심하라는 말이 있었구나 싶었다. 물론, 이것을 깨달은 후라고 해서 대인관계가 극적으로 좋아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형들과 친구들은 여전히 불쾌감을 표했고, 사소한 마찰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이 문제가 해결되는 계기를 맞는다. 바로 '인격적 존중'이라는 말을 깨닫게 된 이후였다. 즉,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 마땅한 소중한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 그렇기에 평등하다는 것. "아! 인간이 왕으로 태어나든, 귀족으로 태어나든 간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한 인간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두 동등하지!" 그때부터 나는 동등한 관계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관계'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존중받아 마땅한 고결한 존재이다. 마찬가지로 상대 역시 그렇다. 그렇기에 동등하다."


그런데, 인격적 의미에서의 동등한 관계를 실천하는 데는 큰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안의 습성-관성을 끊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함부로 말하려고 하는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하며, 무시하고 싶은 생각에 채찍질을 해야 했다. 한편, 이러한 노력이 계속하다 보니 내게 어떤 습관 또는 힘이 자리 잡게 되었다. 즉, 상대방의 '인격'에 주목하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내게 있어 상대의 나이나 지위는 큰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나이나 직위에 벌벌 떨거나 으스대는 태도가 사라진 것이다.


내 정신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위계 의식이 사라지다 보니 이유 없이 대접받을 생각도, 대접할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대접을 안 해줘서 불만이 들지도 않고, 혹여나 내가 그에게 대접을 잘했나 싶은 생각에 끙끙대지도 않는다. 어쩌면, 비교의식을 버렸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더 이상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어졌다. 상대도 나도 존엄한 존재로서 서로 아쉬울 것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 나는 상대와 진실한 마음으로 교류하고 교제하면 될 일만 남았다고 느낀다. 인격적으로 선한 사람과 깊이 대화하며 진실한 교제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남아있다.


다른 한편, 단연 부작용도 있다. 그것도 꽤 크게. 나이나 지위가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지 않으니, 썩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테면, 무례한 태도에 대해 허허허 웃어 준다거나, 부당한 지시를 따른다거나, 굽실대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등의 행동을 말한다. 반대로 나이나 지위가 나보다 낮은 이들에게 이유 없이 형 노릇 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막 챙겨준다거나 뭐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약과이다. 결정적인 부작용은 위계질서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로 오랜 기간 관계하고 대화하면서 형성된 신뢰와 권위가 아니라, 만난 지 5분 만에 나이와 지위를 파악하고 알아서 내리고 올리는 그런 식의 모습에 극도의 반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격적 동등성의 맛을 보고, 위계 의식이 많이 희미해지다 보니 성공에 대한 열망도 사라졌다. 높은 직위에 오르는 일, 1%가 되어 사람들 앞에 서서 박수를 받는 일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 졌다. 대신 그런 성공 말고,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 싶어 졌고, 나의 일이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삶의 방향도 조금은 달라졌다.  



동등한 관계를 인격적 존중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일은 어쩌면 삶의 영역 전반에서 큰 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동등한 관계는 연인-부부 관계일 것이다. 혹시 이 관계를 '동급'이나 '같은 레벨'로 생각하고 있는가?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 그리고 아내나 남편은 동등한 관계이니 내가 거리낌 없이 요구하고, 할 말 다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면 아닐지 모르겠다. 상대방이 존중받아 마땅한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쉽게 말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왕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가?


편하다고 동급이라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거리낌 없이 요구하고, 함부로 대하는 일은 결코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동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고, 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렇게 살면 불편해서 어떻게 살아요"라고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서로에게 막말하는 관계가 진짜 불편한 관계이며, 언제 공격받을지 몰라 긴장하고 있는 관계일 수 있다.


나는 과감히 주장한다.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일은 습관이 형성되기까지의 시간문제다. 시간은 그 낯섦과 어색함을 몰아내고 해결해줄 수 있다.


한 번 실천해보라. 위계질서가 강하게 작동하는 곳에서. 군대나 기업에서 말이다. 하급자에게 존대하고 깍듯하게 대해 보라. 하급자를 동등하게 대해주면 그가 대들 것이라고? 대들면 어떠 한가? 정당한 이유에서라면 당신에게 대들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건설적 비판과 거부는 조직을 성장시킨다. 말 못 하고 참는 것이 악이다. 만약 이유 없이 당신에게 무례하게 구는가? 나이와 지위로 그를 누르지 말고 생각을 하라. 그때 비로소 당신은 지혜롭게 사람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사회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이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들과 갈등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라고 본다.


("어린게 까불어! 어디서 대들어! 부모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남편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엄마한태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역할극에 빠져있는 사람과는 대화할 수 없다. 그럴수록 자녀와 배우자는 당신과 멀어질 것이다. 직장에서는 생계 때문에 상사에게 겉으로 복종하지만, 가정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진짜 무능함은 껍데기 없이는 설득하는 법도, 누군가에게 존중받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다. 껍데기에 숨어 있지 말고 걸어 나와서 문제와 사람을 대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훈련하라. 위계질서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을 고유한 생각을 지닌 고결한 인격적 존재로 파악해보라. 참된 인간관계론과 처세의 지혜가 거기에 있다. 모든 인간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등한 관계'로 바라보길 소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답게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