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동화집, 헤르만 헤세
꿈의 논리에 푹 빠져본 사람이라면 특유의 거부할 수 없는 환상적인 느낌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주변에서도 그 기분에 푹 빠진 나머지 꿨던 꿈을 하나하나 일기로 기록해 남기려는 사람이 몇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꿈이라는 애매한 환상을 현실적인 기록으로 바꿔나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쓰다 보면 스스로 기가 찰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많으니까. 꿈을 있는 그대로 쓰자니 도저히 글이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고, 매끄러운 연결을 만들자니 인위적으로 변해버린다. 게다가 우리가 가지는 꿈의 기억은 군데군데 벌레 먹은 것처럼 비어있어서 그 부분을 메우기가 힘겨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어있는 것은 그만큼 매력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잊어버린 꿈을 기억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에 휩싸이고는 하니까. 애매한 기억 너머로 사라진 꿈만큼 향수라는 오묘한 감정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또 없는 것 같다.
꿈은 이야기를 현실의 구조에 맞춰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 한 방향으로 온갖 것을 뒤틀고 건너뛰면서 우리 눈앞에 던져댄다. 그 기묘한 논리체계 속에는 사실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깊이 있는 상징체계로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그 속에서 우리가 현실에서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다시 발견하거나, 혹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계시를 받거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고자 한다. 그 모든 노력에 현실적인 성과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푹 빠져 있는 동안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가까운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환상동화집>은 이런 꿈의 세계를 우리 앞에 다채롭게 보여준다. 평소 빠져 지내던 꿈의 세계와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꿈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 세계는 <데미안>으로 유명한 작가 헤르만 헤세의 세계이다. 그가 긴 시간 동안 틈틈이 쌓아온 꿈의 세계에 대한 기록은 마치 온갖 상징체계로 가득한 미로와 같다. 읽다 보면 길을 잃고 꿈과 환상 사이에서 헤매게 되는 것은 변함없지만 산, 새, 마술과 같은 상징들이 마치 길을 알려주겠다는 듯이 우리를 유혹한다. <데미안>을 읽은 독자라면 더욱 친숙하게 느껴질 그 상징들은 우리를 그 세계에서 떠나지 못하고 더욱 깊이 헤매게 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낸다.
누군가의 세계를 탐방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 유명한 소설을 읽고 감명받은 사람이라면 이 여행을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설레는 마음에 기대어 충분한 보답을 해준다. 이야기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마치 <데미안>으로 이어지는 듯 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초석들은 이 세계가 처음 싹을 틔울 때부터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던 것들이다. 그들이 가진 유서 깊은 모습은 미로를 헤매다 지친 당신에게 작은 미소와 함께 위로를 전할 것이다.
<피리의 꿈>이라는 작은 세계가 있다. 언제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곡만 연주하라는 아버지의 당부와 함께 피리를 들고 세상으로 여행을 나선 소년의 이야기이다. 향기로운 꽃과 우거진 숲을 보며 유쾌하게 시작한 여행은 아름다운 소녀와 만나며 빛을 내기 시작한다. 둘은 사랑스러운 말을 주고받았고, 아름다운 피리 연주를 하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했고 앞날엔 별처럼 희망이 빛나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마음에 들었지만 세상으로 향하기 위한 열망은 변함없었다. 결국 소년은 소녀와 헤어지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게 다시 나선 길 앞에 깊은 강물과 배를 모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배에 올라 탄 소년은 곧 남자와 서로 노래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제 아름답고 사랑이 넘쳤던 세계는 급물살을 만난 강물처럼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남자가 부르는 노래는 소년이 부르는 사랑이 담긴 아름다운 노래와는 달랐다. 그는 거칠고 어두운 노래를 불렀다. 세상은 어둡고 사악하며 음울한 것이라고, 그는 노래했다. 소년은 놀랐다. 하지만 거부하기에는 그 음색은 신비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앞에서 소년의 노래는 어리석은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졌다. 소녀와 느꼈던 사랑마저도 불안에 방황하며 서로를 상처 입히는 비극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모든 것이 두려워진 소년은 그에게 돌아가자고 간청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소녀와 함께했던 따듯했던 곳으로. 그러나 남자는 엄숙하게 돌아갈 길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대로 걸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소년은 그의 말이 옳음을 알았다.
그렇게 배는 나아갔다. 아름다운 과거를 뒤로하고, 음울한 삶의 무게를 깨달은 채로. 배에선 더 이상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삶의 무게를 짊어진 한 남자의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당신이 삶에 대해 가진 환상은 무엇이었는가? 이 세계에서 그 남자는 우리에게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외면하고 싶었던 삶의 한 부분을 담담하게 전한다.
또 다른 세계에서는 소년이 왕을 만난다. <다른 별에서 온 놀라운 소식>이라는 세계이다. 소년은 심장을 파먹는 새의 상징물을 발견하고, 새를 통해 다른 별로 이동해 왕을 만난다. 왕이 사는 별은 소년이 사는 곳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소년의 별에서 먼 예전에 사라졌던 살육과 전쟁이 존재했다. 왕과 소년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 차이에 놀라고, 슬퍼한다. 그러나 왕은 소년을 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가거라. 너는 가고, 우리가 전쟁을 하고 살인을 하도록 놔두어라!
먼 곳에서 온 아름다운 친구여. 네가 너의 친구, 전쟁 중의 이 불쌍한 왕을 생각할 때에는 진영에 앉아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이 아니라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손에는 피가 묻은 채 미소 지었던 모습을 생각해 다오!
왕의 눈은 애수와 슬픔에 젖었을지언정 그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슬픔과 어두움, 그리고 끔찍한 비극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미로처럼 얽힌 이 꿈의 세계에서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다. <데미안>을 읽었다면 "두 개의 세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 "아브락사스"와 같은 상징들이 머릿속을 떠돌 수 있다. 혹은 꿈의 세계에 익숙해 상징 사이를 좀 더 자유롭게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가 머릿속에서 떠올랐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이 책에 담긴 꿈의 미로는 다채로운 상징을 가지고 힘 있게 요동친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보이는 상징도 많다. 누군가는 니체, 융과 같은 인물들의 영향력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상징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는 것일까. 그 대답은 쉽지 않다. 자신의 꿈조차 제대로 재구성하지 못 한 채 많은 부분을 무의식에 맡기는 것이 우리들이다. 다른 사람의 꿈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꿈에는 의미가 있다. 유심히 지켜본다면 희미한 무의식 속에서 하나의 세계관이 자라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바로 그런 세계의 주인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지난날 잊힌 향수에 잠겨 백일몽처럼 사라져 버린 꿈의 한켠을 붙잡으려 노력한 그 모든 시간들이 단단한 초석이 되어 하나의 세계로 자리 잡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내 꿈의 미로를 방문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상징을 찾으며 헤매게 될지.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충분히 설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