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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jestyy 언제나 Mar 05. 2021

우리를 지키다, 이 땅을 지키다

100여 년 전, 프랑스의 한 대학 녹음실에서 다급하게 우리말을 녹음한 이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언어 말살 정책을 펼치던 일제 치하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젊은이. 그는 언어가 없어진 민족의 비극을 보며 이역만리에서지만 우리말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녹음실을 찾았다.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의 시대가 될수록 인문학과 역사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면서 여러 매체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일화를 접하게 된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만난 사연이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과연 조국을 위해 인간이 가진 가장 소중한 가치, 목숨을 쉽게 내어 놓을 수 있을까. 과연 상황이 닥치면 친일파와 매국노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두려움에 휩싸인다.      


물론 지나간 역사를 청산하며, 그들이 각자 행한 선택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냉정한 역사의 관점에서 사사로운 개인사를 차지하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그다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 청산의 과정이 치밀하고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의 시점에서의 감정의 문제다. 유관순과 윤동주를 떠올렸다. 독립운동은 지금보다 여성에 대한 지위가 한참 낮을 시절에, 그것도 어린 여성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분연히 일어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던 여학생. 어쩌면 확대 재생산된 역사라 하더라도 형무소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열사의 역사를 증명한다. 앳되지만 고문으로 불어터진 얼굴이라도 총기를 잃지 않은 눈빛으로 죄수복을 입은 채 사진이 찍힌 아이. 그 사진 한 장에 우리는 절로 고개를 숙이며 생각한다. 누가 저 아이를 저리 했으며, 왜 저 곳에 있어야만 했는가. 나라면 그럴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 희생이 헛되어서야 쓰겠는가.      


윤동주가 죽고 나서야 엮어 발간된 그의 유고시집을 보면 식민 치하에 놓인 나라의 지식인으로서 느끼는 뼈아픈 성찰이 잘 드러나 있다. 많은 이들이 저리 나가 몸을 던지는데, 적국에서 유학을 하며 느끼는 고통과 한계가 여실하다. 그가 남긴 시 속에서 그는 우물 속에 자신을 미워했다가 불쌍하게 여긴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기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당시로서는 검열되어 마땅할 시를 쓰는 것조차 반동분자의 행동이었겠지만, 치열한 독립운동이 전개된 일제 강점기 후반을 겪는 지식인으로서는 편안한 생활을 하는 자신을 못내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우리가 윤동주에 열광하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으리라. 영웅적이지 않지만 소시민적 삶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기에. 그리고 그 감정이 너무나 이해가 되고 안쓰럽기에.     


두 인물은 같은 시대에 살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갔다. 그리고 프랑스의 어느 대학에서 절박한 목소리로 우리말을 녹음하던 청년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갔다. 위대한 듯 평범한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우리 역사와 산천을 떠올린다. 그렇게 열심히 지키고자 했던 조국, 내 나라를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게 가꾸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푸르디 푸른 날, 날아갈 듯한 꿈과 기개를 가진 이 땅의 청년들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미래이자 나의 현재인 오늘은 없었을지 모른다. 흐르는 역사는 그리하여 두려운 것이고, 내가 걷는 길 역시 무게와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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