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미한 액수지만 10여 년 동안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를 돕는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다. 여유가 있다면 여러 곳에 기부하고 싶지만, 가장 시급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적게나마 기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이라 하지만 난민 아이들을 돕는 경우도 많은 모양이다. 굳이 이야기 할 일은 많지 않지만, 연말정산 자료라든지를 보고 오지랖 넓게 참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은 액수라 내세울 것도 없는 일인데, 나름 나를 좋은 사람으로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인 모양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꼬리말처럼 따라 붙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애들도 어려운데...
난민 애들을 도와주면 나중에 테러리스트가 되는 걸 돕는 거 아냐...
이런 기막힌 오지랖이 있나.
내가 그 애들의 인생에 도움을 주면 얼마나 줬다고, 한 달에 겨우 몇만 원 주면서 그들의 미래의 선택마저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선단체가 운영비며 뭐며 떼먹는 돈이 많다 치면 그들에게 대체 얼마나 간다기에, 그리고 수억 금을 준다 한들 돈 앞에 그들의 자유의지를 살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내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 테러리스트가 된다 한들 마음은 아프겠지만, 내 탓으로 여길 만큼 어리석지 않다. 나는 그들이 기본적인 인간적 권리를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게나마 기부를 한다. 먼 타국의 아이들이든, 잘 모르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든 그저 굶고, 아픈 아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그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든 그건 내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
테러리스트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기가 막힌다. 화가 나기도 하고, 저 사람은 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됐나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는 국가라는 울타리와 보호 아래서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질 권리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약한 국가, 가난한 국가에 태어나 비극적으로 살아갔던 경험이 우리 역사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적어도 의식주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문화와 사상의 옳고 그름이나 다양성도 일단은 살고 봐야 할 문제가 아니던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나를 구하러 와 줄 사람도, 국가도 없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할 절망일 것이다.
무엇보다 아무런 힘도 이유도 없이 절망과 비극, 그리고 무기력 앞에 선 아이들이 없게 해야 한다. 그것이 어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월급의 일부를 내어 놓는 이유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차마 자동이체를 끊지 못한 이유다. 그게 내가 되었을 수도, 아니면 내 아이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누구나 생각해 봐야 한다. 태어나는 것은 선택이 아니기에 그 누구의 삶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