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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예 Oct 25. 2022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로

제 6 화


환상의 나라, 서울



서울 사람들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고, 경주 사람들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고, 제주도 사람들은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다. 나는 제주도 사람은 아니지만, 수학여행으로 서울을 갔던 기억이 있다. 서울과 경주, 제주도 모두 수학여행 코스 후보에 있었지만 늘 수학여행 장소가 서울로 선정되기를 바랐다. 티브이로만 볼 수 있던 꿈같은 공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낭만 가득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아마 그것이 내 인생의 첫 서울 땅을 밟는 날이었을 것이다.


수학여행 코스에는 에버랜드도 있었다. 우습게도 에버랜드는 서울이 아니지만, 심지어 경기도민은 서울 가는데 지하철 타고 꼬박 1시간을 이동해야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겐 인천,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다 서울로 인식되었다. 경기도 어디에서 전학을 온 친구는, "서울 사람" 그러니까, 서울 아이들이 비수도권 시·도 위치를 모르듯, 10대를 살아가는 담양의 아이들에게도 서울 및 수도권은 "윗 지방"으로, 특별히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로



나에게 에버랜드는,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후에 에버랜드에 회원권이 있다는 걸 알고 놀라기도 했다. 누군가는 '환상의 나라'에 그 정도로 자주 올 수 있다고? 그렇다면 그게 '환상'의 나라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정말 '환상'의 나라였던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몇 번인가 에버랜드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놀이기구를 타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짝수로 방문해야 했고 각자 다른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시간도 맞아야 했는데, 그게 참 어려워서 여행 계획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인스타그램에 온갖 놀이동산 여행 사진이 올라오던 5월. 마침내 나는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에버랜드에 방문할 계획을 세우는 데에 성공했다. 대부분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 방문 날짜는 부득이하게 공휴일을 끼고 있는 황금연휴 주말로 결정되었지만, 그래서 제대로 못 놀고 인파에 허덕이다가 돌아오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있었지만 당장은 설레는 마음이 컸다.


사실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에버랜드 여행인 만큼, 놀이기구도 많이 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싶었다. 여하튼 재밌게 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금 힘들더라도 카페인 수혈을 하면서라도 오래오래 놀고 싶었다. 자주 가지 못하니까, 또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번에 가서 뽕을 뽑아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만, 아니 한나절만 시간을 내면 에버랜드를 갈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친구들은 이 기분을 모르겠지. 분명히 기쁜데, 초조했다. 나는 이 초조함을 견디기 힘들어서, 에버랜드 입구에서 티익스프레스까지 가는 최단 동선 영상 같은 것을 유튜브로 찾아보기도 했고, 어떤 놀이기구를 먼저 탈지 거리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했다. 늘 효율과 계획을 습관처럼 달고 사는 탓에 놀이공원도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내가 답답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언가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담양-광주-용인-에버랜드



담양에서 용인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담양은 서울행 버스도 하루에 두 대 뿐인 시골이기 때문이다. 또 지리적으로 광주와 맞댄 위치라서 담양 사람들은 많은 편의 시설을 광주에 빚지고 있다. 지금은 담양에도 여러 문화·편의 시설이 생겼지만, 내가 갓 성인이 되었던 2014년도만 해도 담양에 프랜차이즈 음식점 자체가 드물었다.


그러한 이유로 용인을 가려면 먼저 광주로 가야 했다. 직행버스를 탄다면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광주에서 다시 용인까지, 버스를 타고 용인터미널에서 또다시, 에버랜드까지 가야 했다. 담양은 광주보다 북쪽에 있어서 사실 거리로만 따지면 서울·경기와 더 가까운데, 버스가 적거나 없다 보니 늘 이렇게 광주를 거쳐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차비도, 시간도 더 들여야 했다. 에버랜드로 놀러 가기로 한 친구들 중, 가장 일찍 출발해야 했다. 노는 데 더 많은 돈을 쓰고 싶으면 교통비를 조금이라도 아껴야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우등이 아닌 일반 버스를 예매하기도 했다.



뽕을 뽑는 눈치 게임



에버랜드 방문 당일. 비가 올 것처럼 날이 흐렸다. 이번 방문을 포함하면 에버랜드를 방문은 세 번째였다. 2n년을 살면서 딱 세 번을 갔는데, 갈 때마다 비가 왔다. 이럴 수가 있나? 애꿎은 하늘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행히 비는 금방 그쳤다. 그저 흐리기만 한 날이 되었다. 이것이 오히려 득이 되었다. 비가 올 거라던 일기예보 탓이었는지, 황금연휴인 것에 비해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구름으로 해가 반쯤 가려져서 6월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덥지 않게 돌아다닐 수 있기도 했다. 오전에 입장한 사람들이 슬슬 점심을 먹고, 피로로 잠깐 쉬고 있을 시간에 오후권으로 입장을 했다. 그래서인지 늦은 입장이었음에도 생각보다 많이 놀 수 있었다. 원하던 T익스프레스와 바이킹도 탔고, 에버랜드 장미정원에서 사진도 잔뜩 찍었다. 돌아다니다 줄이 짧아 보이는 놀이기구가 있으면 즉흥적으로 타기도 했다. 내가 했던 걱정이나 그로 인한 계획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결국 원하던 대로, "뽕을 뽑았다"



동등하게 즐기려면



담양에서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를 방문하는 것이 이렇게나 품이 드는 일이다. 버스를 갈아타고 남들보다 일찍 출발해서, 피로해서 즐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커피도 미리 마시고,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 놀이기구와 놀이기구 사이의 최단 거리를 알아 놓는 일. 좀 더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이는 일. 그래야만 그들과 동등하게, 놀이공원 같은 것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이 내가 사는 곳이 서울과 한참 떨어진 비도시, 담양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새삼스레 상기시킨다.


7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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