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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헤니 Heny Kim Sep 30. 2020

11화, 감자전-하페

이리저리 헤멘 사람의 레시피




감자를 잘게  썰어 팬에 노릇하게 구워낸 요리는 세상 어느 곳엘 가도 찾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름에 지졌다는 뜻을 가진 감자전, 스위스에서는 굽는다는 뜻의 뢰스티(Rösti), 프랑스에서는 강판에 갈았다는 의미의 하페(Râpé), 영국에선 잘게 다졌다는 뜻을 가진 해시브라운(Hash browns)  예다. 감자를 썰고 구워내는 방법에서 이름에 드러난 각자의 뜻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같은 재료를 바탕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친 요리도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식감으로 완성된다. 감자전을 만들  감자를 갈아내는 작은 가시가 위로 솟아 있는 강판을 사용하면 쫀득한 질감의 감자전이 되고, 서걱서걱 얇게 채쳐지는 작은 구멍이  스테인리스 강판을 사용하면 감자의 맛이 선명한 바삭한 식감의 감자전을 만들  있다.

이름 모를 거리를 걸으며 낯선 얼굴을 보는  익숙해진 눈은 집에 돌아온 후에도 익숙한 것들을 보던 대로 보기를 거부한다. 창밖의 초록빛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보면서 오늘  집과 과거 초록빛이 흐트러지던 모든 장소에 동시에 놓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나와  주변의 풍경은 내가 어떻게 보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모양이다.

예전에는  자신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자기 앞에 주어진 재료를 어떤 도구를 사용해 무엇으로 만들어낼지 결정하듯 우리는 자기가 보고 들을 것을 선택하고 다듬어내 자신만의 풍경을 정립한다.

보라는 대로 보는 , 눈먼 눈은 익숙한 장소를 지날 때마다 우리의 눈을 덮는다. 당신이 혼자서 발견한, 어쩌면  세상에서 당신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사실을  보이지 않게 뭉개서 다시 배경으로 밀어내버린다. 낯선 도시의 풍경은 가장자리가 뿌옜다. 나는 어디에  건지도 모른  낯선 거리들을 걷거나 달리면서 새로운 풍경을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리는 작업을 계속 해왔다. 어떤 새로움도 발견할  없는 날에 나는 멀리서  , 낯선 얼굴을 보는  익숙해진 눈을 다시 불러온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보고 싶지 않을  
나는 감자전도 하페도 아닌 감자전-하페를 만든다.
바삭하게 부쳐진 감자전-하페의 선명한 맛이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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