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파리의 요리학교 페랑디에서 칭링도 나처럼 세바스티앙 셰프에게 요리를 배웠다.
우리는 샹젤리제에 위치한 팔라스 호텔의 2스타 레스토랑 르 가브리엘 Le Gabriel에서 함께 일했다. 내가 하루 10시간 주 5일 6개월간의 인턴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막 인턴십을 끝내고 계약서에 사인을 한 참이었고, 쉬는 시간을 포함해 하루 16시간, 주 5일을 일하고 있었다.
학교 수업이 절반쯤 진행되었을 즈음 각 반을 담당하던 세 명의 셰프들은 인턴 배정을 시작했고 세바스티앙 셰프는 나에게 전설적인 레스토랑인 라스트랑스 L’Astrance에 갈 것을 추천한다. 천재라고 불리는 파스칼 바흐 보가 배출한 젊은 여성 셰프가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부푼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하며 기다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반의 친구에게 자기반의 한국인 남자가 라스트랑스에 인턴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길 듣게 된다.
한 학기에 35명 남짓한 학생들이 있고, 인턴십이 중복되지 않게 쉐프들끼리 신중하게 의견을 교환/조정하기 때문에 나는 왜 갑자기 기대를 접어야 하는 일이 생겼는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다음 날 세바스티앙 셰프는 곤란한 얼굴을 하고선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며 내게 르 가브리엘을 다시 추천해준다. 자신이 그곳의 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덧붙인다.
학교의 졸업식 때 내 자리를 지우고 다른 학생을 보냈던 옆 반의 셰프를 복도에서 마주친다. 그가 나를 쓱 위 아래로 훑어보는 걸 본 바로 그 순간 나는 왜 그가 내게서 기회를 빼앗아도 된다고 결정했는지 알아차린다. 다음 해에 같은 프로그램을 듣게 된 한국 여자가 꼭 라스트랑스에서 인턴십을 하고 싶다며 나를 찾아온다. 나는 내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고 그녀가 해야 하는 일들을 일러준다. 그녀의 SNS에 라스트랑스의 사진이 올라온다.
르 가브리엘의 동료들은 불어를 못 했던 나에게 많은 것들을 준다. 폴과 필리프는 친구가 되어주고 윌은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알려준다. 에두아는 인턴십이 끝나기 전에 나를 불러 랍스터를 손질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일할 곳이 필요하면 언제든 자신들에게 연락하라는 말은, 매일 최선을 다해 뛰어다녔던 시간들을 보상해준다. 칭링은 늘 단단해 보인다. 예전에 그녀는 어머니의 가게 중 하나를 직접 맡아 운영했다고 한다.
이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일본인 남자가 팀에 들어왔을 때 제롬 방텔 쉐프는 그에게 오믈렛을 한번 만들어보라는 주문을 한다. 그 일로 칭링은 며칠 내내 얼굴이 어둡다. 그가 만든 오믈렛은 속이 덜 익어 계란 물이 흘러나온다. 그는 파리에서 사창가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식으로 남자 무리에 자연스레 녹아들려는 시도를 한 그는 일을 시작한 지 열흘 즈음이 지났을 때 픽 하고 쓰러져 모두를 놀래킨다. 수 셰프인 린은 여성의 나체 사진이 표지인 잡지가 펼쳐진 테이블에서 셰프와 함께 매주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낸다.
같은 반 친구였던 팡이는 다비드 뒤탕의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계속되고 같은 팀의 요리사에게 장난으로 키스를 당한다. 이후 일을 계속할 곳을 찾지 못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프랑스의 요리 매거진인 푸딩엔 베트남계 프랑스인 셀린 팜 셰프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시절 수 셰프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레즈비언이니 좀 만져도 상관없지 않냐는 소릴 들었다는 기사가 뜬다.
폴은 흑인으로 사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어느 하루 칭링과 나는 폴의 집에 모여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만든다. 칭링은 구아 바오를, 나는 잡채를 만들어 맛있는 시간을 나눈다.
어느 날 칭링이 나에게 말한다.
있잖아, 나 아이를 가지고 싶어.
칭링은 10시간만 일하고 싶다고 셰프에게 요청한다.
나는 그녀의 시도를 지켜본다.
셰프는 그럴 순 없다며 거절한다.
칭링은 어두운 얼굴로 고민한다.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엄마가 된다.
셰프가 나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요리를 내 삶의 모든 것으로?
내가 아시안/여성이라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시안, 여성의 마음에 남아 나를 괴롭혀온 일들을
사실 그대로 적어보아도
세상에는 별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