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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다윤 Jul 05. 2020

오늘의 시발비용 지출내역서 : 실내 야구 배팅장

실내 야구 배팅장 10회 1,000₩

 고래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는 졸지에 고래들의 싸움을 중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하도 굽실대다 보니 등이 굽은 것도 서러운데, 터져버리기까지 한 등을 부여잡고 새우는 학과 사무실 문을 잠그고 퇴근한다. 견원지간인 두 교수님 사이에 끼여버린 어느 불쌍한 학사 조교의 이야기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을 흘긴다고 했던가. 오늘도 실내 야구 배팅 연습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야구를 해본 적도 없고, 야구경기를 즐겨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조교 업무를 맡은 이후로 방망이로 야구공을 때리는 습관이 생겼다. 차마 사람을 때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000원짜리 지폐를 한 장 집어넣으면 내게 10번의 기회가 생긴다(몇 년 전 기준). 공을 치거나 못 치거나. 무승부는 있을 수 없다.



그렇게 기계와 나의 외나무 대결이 시작된다.      




 상대의 투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다이다이, 맞짱, 결투의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집중력을 가다듬는다. 기계는 단순하고 우직하다. 말과 행동이 다른 변화구로 나를 속이지 않으며, 뒤에서 공격이 들어와 뒤통수를 얻어맞는 일도 없다. 그저 선전포고 이후에 정정당당한 투구를 시작할 뿐이다.      

 기계는 언제나 직구만을 던진다. 타자인 내게 공은 좁쌀만큼 작게 보이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수박만큼 크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변수는 오직 나의 심리 변화뿐, 모든 조건은 이전 공과 동일하다. 동일한 상황과 조건에서 초연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람 마음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한 기계와 복잡한 사람이 만나서도 파울, 홈런, 1루타, 2루타 같은 다양한 상황이 연출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게 되면 어떤 상황이 나올까. 복잡한 사람과 복잡한 사람이 만나 복잡한 상황을 빚었고, 그 사이에 복잡한 사람이 끼이게 된다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복잡한 정치와 처세에 흠뻑 젖은 날에는 가식을 벗고 담백하게 말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이 많아지고, 다양한 변수들을 통제하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하면, 나는 실내 야구 배팅장을 찾았다. 단순한 승부에 몰두하는 것으로 젖은 마음을 바싹 말리고 나면 한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홈런을 한 번도 못 치거나 반 이상을 헛스윙하는 날에도 약간의 아쉬움만 털어내면 홀가분해졌다.     

 나는 기계 더미에 파묻혀 사는 사람은 아니다. 나 혼자서는 외로움을 타기도 하고, 자급자족도 불가능해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부대껴야 한다. 그렇게 복잡한 사람들 틈에서 힘겨워하다가도 꾸역꾸역 무리 속으로 돌아가는 내 모습 또한 어찌나 복잡한지.     

 나는 사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단순한 기계와의 승부로 풀 때도 있지만, 사람에게 털어놓으며 푸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하소연을 하다 보면 들어주는 사람과 싸우기도 한다. 정말 인간은 알다가도 모를 요지경 같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그래도 사람 때문에 울다가도 사람 때문에 웃는 것을 보면, 인간은 미우나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이 정 미워 견딜 수 없다면 실내 배팅장에서 방망이나 휘두르고 겸연쩍게 슬쩍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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