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이 크지만 단단하다는 것.
그만큼의 경력을 인정받고 온다는 것은 주어진 역할이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특이하게 큰 회사에서 작은 회사로 이직한 케이스이다. 처우도 괜찮고 회사의 분위기도 괜찮아 보이길래 도전한 경우이다. 보통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넘어가거나 소기업에서 중소기업, 그다음 중견으로 넘어가는 케이스가 많던데, 나는 규모가 큰 거의 중견기업급의 중소기업에서 완전 소규모 기업으로 이직한 케이스이다. 소규모 기업이라고 해도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점이 안정적으로 다가왔으나 가장 큰 이직의 이유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자유롭게 의견을 펼치며 일할 수 있는 외국계 회사 같은 그런 느낌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안을 받고 나서 많이 망설였다. 유튜브나 블로그, 브런치 모든 글들을 찾아봐도 작은 회사로 이직은 대부분 추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은 회사로의 이직을 한 이후가 문제라고 했다. 그 회사에서 다니고 다시 큰 회사로 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고 했다. 그나마 큰 중소기업이라면 중견으로 넘어가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크게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그래 인생은 한 번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싶은 대로, 재미있게 몇 년 간이라도 살아보자. 해서 작은 회사로 이직을 결정했다.
사실 결정하고 나서도 한 달 간은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지금 옳은 선택을 한 것이 맞는지, 이 회사가 내가 가자마자 망하면 어쩌지(절대 그런 회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가장 크게 망설였던 부분은 기존의 회사에서 구축해왔던 나의 입지였다. 기존 회사는 입사하고 난 그 년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고 그 부분에 대해 역할을 인정해 주었다. 그래서 직급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서의 입지 또한 크게 높아져 있었다. 해당 부분의 직무는 '나'를 통해서만 진행할 만큼, 그래서 인센티브 등 많은 이점을 누려 왔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서는 이런 입지를 구축하려면 그만큼의 역할을 해야만 하고, 과연 펼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미 기존의 회사의 프로세스, 분위기, 사람 등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고민이 점점 더 커져간 채, 그렇게 첫 출근을 했다.
생각보다 회사생활은 견딜만했다. 역시 경력직을 뽑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회사의 팀에 들어가 한 달간 프로세스를 쭉 관찰해보니 문제점과 개선점이 보였다. 비록 긴 경력은 아니나 잘못된 부분은 명확했다. 또한 기존 업무를 여기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가 눈에 보였다. 모든 게 퍼즐처럼 맞아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거의 예상한 수순대로 모든 절차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우려한 것보다는 빠르게 적응했고 입지 또한 근차근 굳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역량의 한계 또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작은 회사로 옮긴 만큼 역할을 분담해서 맡는 사람은 없었다. 기존의 역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까지, 2개의 역할을 동시에 맡아야만 하는 것이 소규모 회사 경력직의 현실이었다. 다행히 벅차지는 않았지만 조금 막막하긴 했다. 어떻게 이 일을 풀어나갈지 모든 고민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어디에 기대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 채 일을 풀어나가야 했다.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니까.
그리고 지금도 풀어나가고 있다. 막막하다고 해서 물어볼 곳은 없다. 이곳에서 모든 일들은 나의 몫이다. 오직 자신만이 풀어나갈 수 있다. 업무의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