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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약시 Nov 08. 2022

힘들수록 대충 때우지 맙시다.

끼니는 이렇게 중요한 거군요

근 1년간 회사에서 야근이 반복되는 데다가 자취까지 시작하니 끼니를 대충 때우는 일이 잦아졌다. 끼니를 대충 때운다고 하면 못 먹고 다니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반대로 아주 잘 먹고 다녔다. 회사에서 주는 식대 만원으로 근처에서 먹을 수 있는 모든 음식을 거의 다 먹었으니 말이다. 근데 어딘가가 많이 허전하다. 왜 나는 허전할까. 항상 저녁에 맛있는 걸 먹고 다니는데 말이다.




전 회사에서는 야근을 자주 하지 않았다. 했다고 해도 30분 정도 하고 바로 퇴근하곤 했었다. 그렇게 집에 가면 따끈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지만 굳이 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끼니를 자주 거르곤 했다. 자취를 시작하고 야근이 잦아진 지금 생각해보면 사치도 그런 사치가 없었다.


그때는 굳이 그 밥이 필요하지 않았다. 끼니가 아니더라도 나를 위로할 것들은 차고 넘쳤다. 집에 가면 항상 피곤하지 않았냐며, 일은 힘들지 않았냐며 맞아주던 가족들이 있었고, 언제나 밥은 밥솥에 가득했다. 퇴근 후,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뚝딱 한상이 차려질 수 있었다. 그래서 간절하지 않았다. 항상 먹을 수 있었다. 오히려 살이 찔까 봐 끼니를 거르거나 밖에서 샐러드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저녁거리를 먹고 들어가곤 했었다.




왜 근데 지금은 그때랑 많이 다른지 모르겠다. 자취를 시작하고 그 저녁밥상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고마운지 깨달아서 그런가. 집에 오면 나를 위한 한상을 차리기 위해 모든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근무에 시달리고 온 자취생에게 건강함이 첨가된 반찬이 가득한 저녁 한상은 엄청난 사치였다. 그래서 귀찮음을 조금 덜고자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기 시작했다. 굳이 야근을 하지 않더라도 저녁을 밖에서 먹기 시작했다. 


근데 왜 이렇게 저녁을 먹고 나면 마음이 허전한 건지 모르겠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해 주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저녁조차 차리지 못하는 게으른 나 자신을 보고 한심하다고 느껴서 그런 걸까? 1년여간 이런 생활을 반복하니 마음과 몸이 지칠 대로 지쳐버렸음을 느꼈다. 살은 살대로 쪘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텅 비어버렸다. 


예전에는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며 사람들이 왜 힐링한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 했으나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 자신'을 위해 오롯이 하루를 보내며, 자연 속의 다양한 식재료로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데 모든 시간과 힘을 쏟아내니, 그 이후의 '나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자취 전에는 가족들이 그 위로를 대신해주곤 했으나 지금은 온전히 나 자신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니 허둥지둥 대는 것을 느낀다.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모르는 것들 투성이라니, 항상 평생 배워야 함을 느낀다.




요즘 이런 허전함을 크게 느껴서 2일 정도 칼퇴를 하고 집에 와서 저녁 한상을 차려보았다. 시장에 가서 이런저런 장을 본 뒤 차린 오늘의 저녁은 '삼겹살과 비빔냉면'이었다. 바깥에서 사 먹는 게 가장 맛있는 메뉴인데 왜 나는 오늘 내가 차린 저녁이 더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는 내가 웃겨서 먹다가 몇 번을 피식했다. 혼자라 누가 뺏어먹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오늘의 저녁을 뚝딱 해치워버렸다. 물론 이를 위한 설거지가 개수대에 한가득 했지만, 이를 닦으면서도 즐거웠다. 내 집에서 이렇게 오롯이 날 위해 상을 차려 먹어본지가 얼마만인지, 자취한 지가 1년이 다되어가는데 그 횟수가 손에 꼽힌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이제 혼자 산지 1년 차인데 아직도 배워야 할 것, 독립해 나가야 할 것들 투성이다. 언제쯤 나는 어른이 되어 성숙하게 이 모든 것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은 내가 아직도 어린 탓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일단 끼니부터 대충 때우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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