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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지구인 Apr 18. 2023

나 홀로 Jeju 2 _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나만의 리추얼 만들기.

#1


자전거를 타면

어김없이 배가 고프다.


자전거를 함께 타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모임이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뚜르드 푸드라이더. 하하하.


뚜르드, 이하는 '뚜르드 프랑스'처럼 지명이 나오기 마련이나,

우리가 향하는 곳은 그저 "먹는 행위" 그 자체이다.


처음 모임 이름을 지을 때,

나름 세련된 사회적 자아를 가진 이들이 모여 만든


"먹기 위해 탄다!"라는 노골적인 워딩이

난 살짝 부끄러웠다.


그런데 자전거 위에서 2년쯤 사니,

지금은 이보다 더 진실한 이름이 없다 생각한다.


난 여기 제주에서

여전히 고맙게도


자주

배가 고프다.



#2


내가 참 애정하는 바다,

협재를 지난다.


15년 전쯤,

생애 최초의 제주 여행을 이곳에서 시작했다.


협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시는 어른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사진 몇 장 당신 느낌 껏 찍어주고 오래 쉬다 가라 했었다.


스치는 이야기 일수 있는 그 낯선 어른의 말씀을 귀히 받아

정말로 일주일과 두 번의 주말을 꾹꾹 눌러 담아 카메라와 함께 머물렀었더랬다.


그리고 밤낮을 하염없이 뒹굴며 제주를 꾹꾹 눌러 담았는지,

협재가 내게 깊이 배었다.


나, 협재는

비단 추억이 깃든 옛 시절의 플롯이 담겨서 특별하다 퉁치기엔 많이 아쉽다.


품을 협 挾, 재주 재才!

제는, 주 바다가 지닌 특별한 재주를 한껏 품은 바다다.  


고즈넉한 비양도를 지나,

보드라운 살결 같은 파도들이 가지런지 땅으로 밀려오는 풍경,  


그리고 제주가,

가히 태평양 바다 가운데서 분출한 화산이었음을 가늠하는 멋스러운 현무암들,


마지막으로, 역시 모든 풍경의 화룡점정은 사람일진대,

노인과 아이, 사랑과 청춘이 한가로이 뒤섞여 드는 인류와 자연의 회화같은 조화.


이상하게 이곳 협재에겐

이곳 만의 정령이 있다.




#3


고픈 배의 허기를 데리고

협재를 이리저리 배회하는데,


나를 먹어주세요!(Eat me!)는 귀여운 구호와 함께

샌드위치 하나가 말을 건넨다.


귀여운 샌드위치의 몸을 입고

머리와 팔만 빼곡히 내민 저 친구의 외침에 기꺼이 반응한다.


"그럽시다.

 기꺼이 잡수어 드리지요~!"



샌드위치를 천천히 베어무는 한입에서

따뜻하고 바삭한 질감의 빵과, 입안을 가득 흘러들어오는 체다 치즈,


그리고 제주 채소의 파릇한 싱그러움과 페퍼로니의 적절한 존재감이  

입안에서 향연을 벌인다.


비로소 협재와 함께

몸이 밝게 깨인다.


그리고 여기서 난,

오래도록 시간을 잃어버린다.  




#4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이란 책을 작년 이맘 즈음에 샀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열망의 발로였는지,

제목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책을 다.


하나, 불과 책의 하프라인을 넘지 못할 만큼

작년의 난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안식월을 맞아

가장 처음 다시 완독한 책이 이거다.


꽤 괜찮은 대학 교수로 일하며,

크게 대단할 것도, 부족할 것도 없는 생을 편히 잘 살던 저자, 제니 오델은


갑자기 생의 큰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는데,

그건 다른 아닌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었다.


하루아침에 너무 급격히 바뀌어버린 세계의 질서,

그리고 본인이 결코 동의할 수 없이 달라진 문명의 흐름!


저자는 그 갑자기 닥친 당황스러운 격랑에서 문명을 등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에 머무른 경험을 이야기하며 운을 뗀다.


그리고 그저 살아가던 시간을 멈추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 간다.


'바쁨'은 어느 것에도 집중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태임을 깨닫고,

자기의 몸에 감각되는 세상에 오롯이 '관심'을 주며 저자는 '지금'을 되찾기 시작한다.


내 몸을 한참 떠나 있는 것들,

그리고, sns와 무수히 떠다니는 뉴스들을 끊고


내 몸 곁 지저귀는 새들에

오롯이 관심을 주시 시작한다.  


렇게 바쁨이 빚어내는 어지러운 조각의 더미를 대차게 끊어 내고,

저자는 '지금'의 시간의 꿰어 '사유의 맥락'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갑자기 던져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저자의 서사가 울림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건 것을 떠나, 빈 시간에 머무르는 것이다."



#5


안식월이

일탈이 아니길 바랐다.


그건, 언젠가 끝날 이 시간에서,

친구를 만나, 데려가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 친구는 다름 아닌,

살고픈 생의 작은 질서, 리추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없는 시간"을 너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법"을 지니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가는 서사를

매일 내가 보내는 일상의 꼭지에 리츄얼로 담아가는 것.


난 여기, 협재 바닷가에서

머물고,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세 가지의 리츄얼을

다짐한다.


첫째, 배가 고플 만큼 몸을 움직여

        배고픈 몸을 천천히 느낄 것


둘째. 무언가를 먹을 때,

        그 음식과 오롯이 그리고 정성껏 시간을 보낼 것.


셋째. 내가 지나는 자리 어딘가에 꽃꽂이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잃어버릴 것.



글을 열심히 썼더니,

배가 고프다.


고픈 배를 천천히 느끼니,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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