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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찌 Jun 14. 2020

딸 둘에 아들 둘, 넷 낳을 거예요!

애는 낳는 게 제일 힘든 줄 알았다.

딸 둘에 아들 둘, 넷 낳을 거예요!

신혼 초, 사람들이 2세 계획에 대해 물으면

거침없이 하던 말이었다.

심지어 시어머니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씀드렸다.

"딸 둘에 아들 둘, 넷이 딱 좋은 것 같아요~"



그저 웃으셨던 어머님께선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

어쩌면 갓 결혼 한 며느리의 철없는 말을 그냥 웃어넘기셨을 수도.



1남 2녀, 다섯 식구인 우리 집에 살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식구가 많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어쩌다 가족모임에 한 명이라도 빠지면 적다고 느낀 적은 있어도.

혼자 아들인 남동생이 외로울 것 같아

막연하게 식구는 많을수록 좋은데

소외되는 사람 없게 짝수는 맞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갖게 된 나 혼자만의 가족계획, 딸 둘에 아들 둘!






결혼 후 1년 만에 간절히 바라던 첫째 아이를 임신하게 됐고

2년 같았던 만삭 두 달을 버티고 출산하는 순간,

'아, 이제 끝났다-'하는 생각과 남편에게 말했다.

"둘째는 없어."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다.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태어났으니 하하호호 웃음소리만 피어나는 가정이 되겠지.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걸, 나는 정말 몰랐다.

애 키우는 게 힘들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진짜 정말로 그 정도일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새벽수유 하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끝없는 고통이던지,

통잠을 자주는 게 얼마나 이뻐보이던지,

(그나마 우리 아이들은 50일쯤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효자들ㅠㅠ)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눈치싸움이었고,

엄마가 뭐 먹는 건 기막히게 알고 달려들어서

재우고 나서 허겁지겁 소리 없이 먹는 게 일상이었고,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게 소원이 되었다.



어쩌다 아이가 일찍 잠든 날

남편과 둘이 마주 앉아 여유로운 식사는 메뉴가 무엇이든 행복했지만,

그마저도 긴 시간 허락하지 않고

옆에 누가 없으면 30분마다 깨서 우는 첫째였다.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생활에

남편도 나도 지쳐갔고,

싸우는 횟수도 점점 늘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돌아오지 않는 내 몸에 화가 났고,

입고 싶은 옷을 입지 못하고 맞는 옷을 찾아 입었다.



난 그냥 단지,

내 시간을 갖고 싶었고,

밤에라도 잠을 푹 자고 싶었고,

참지 않고 화장실에 가고 싶었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 말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었고,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돌도 안된 아이는 그 기본적인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적응이 된 것일까,

아이가 커가면서 힘들었던 게 잊힌 걸까,

둘째가 생겨도 괜찮겠다고 방심한 걸까.


첫째의 돌잔치를 앞둔 어느 날

두통이 잦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남편이 먼저 제안한 테스트기의 결과는 두줄이었다.

생각도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남편도 나도 언젠가 생길 둘째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지금이라니, 이렇게 빠를 줄이야.


그렇게 첫째의 돌잔치는 뱃속의 둘째와 함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되었다.


둘째는 사랑이라던데,

뭘 해도 이쁘다던데.

그만큼의 사랑을 주지 못했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둘째 6개월까지 같이 생활해서 그런 거라는 핑계를 대고 싶다.


설상가상으로 100일도 안된 둘째 아이에게 시작된 병원생활.

한 달의 입원과 퇴원, 병원에서 맞은 100일

그 후, 두 번의 일주일 입원과 수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만 들었다.



뇌를 다쳐서 성인이 되어도 지속적으로 검사를 해야 한다는 담당교수의 말의

겉으로 아무 문제없이 잘 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었는데,


첫돌이 다가올 무렵,

검사 결과에서는 더 이상 영상검사를 안 해도 되겠다고

다음 외래도 잡아주지 않겠다며 웃으며 말하는 담당교수님이 천사로 보였다.



물론 다른 과의 외래는 아직 계속 다녀야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잡혔다는 생각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둘째가 주는 가장 값진 돌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엄마 아빠는

둘째의 선물을 받고 둘째에게 동생을 선물해 주었다.


첫째와 둘째 개월 수 차이와 비슷하거나 똑같은 개월 수에 태어날 셋째.

아이의 첫돌이 우리 부부의 고비인 듯하다.

'돌 즈음 되면 살만해지나 보다'가 우리의 결론



이러다 정말 딸 둘에 아들 둘,

아. 셋째도 아들이니까 이미 내 자녀계획은 망했구나.

이러다 정말 넷 낳을 것 같아서

이제는 정말 남편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때가 온 것 같다.


셋째가 생긴 걸 알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고,

그리고 막막했지만,


병원에 가서 셋째 아이를 보는 순간

'아, 이제 진짜 우리 가족이 완성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제 내 가족계획을 수정해야겠다.

아들 셋 엄마, 그걸로 만족하자.

내 팔자에 딸은 없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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