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한 Jan 24. 2023

법규와 에세이

냉정과 열정 사이

요즘 생업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읽는 것’과 ‘쓰는 것’이다. 본래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별개이기도 하지만, 내가 분투하며 읽는 문장들은 지금 내가 써내는 문장들과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자격증을 위해 틈틈이 세법의 문장들을 읽고, 매주 글쓰기 모임을 위해 에세이를 한 편씩 써내고 있다. 연관성이 전혀 없고 결이 다른 문장들을 만나는 것은 때로는 피곤하고 때로는 신선하다.


세법은 윤기가 없고 차가운 문장들의 연속이다. 부드럽게 우회하고 비유하는 글일수록 입체적이고 즐겁게 읽히는 에세이와 달리, 법규는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오해 없는 표현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직설적이라 해도 적용을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한데, 그 지점에서 세법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연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 집단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한국어로 쓰여있다고 다 같은 한국어가 아니란 말이다. 해석만 어려운 것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법규를 이해한 뒤로 그 수많은 내용을 눈에 바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이 진정한 곤욕이다. 자격증 1차 시험은 객관식이기 때문에 틀린 문장을 가려내기만 하면 되는데, 2차에서는 서술이라서 암기가 불가피하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요즘 법 공부에 시달리다 보면 ‘너 이렇게 어려운 걸 준비했던 거니? 이 정도로 힘든 건 줄 알았으면 내가 더 잘해줄걸 그랬다’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그래서 네가 계속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도)


지난달, 두꺼운 기본서를 세 바퀴 돌리고 이제 좀 문제를 풀만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자신 있게 모의고사를 푸는데 심란한 문장을 하나 만났으니, 그것은 아래와 같다. 단박에 이해가 되는지 읽어보시길..

[심사청구에 대한 재조사 결정에 따른 처분청의 처분에 대해서는 해당 재조사 결정을 한 재결청에 심사청구를 제기할 수 있다.]

한 문제에 1분을 할애해야 하는데, 이문장을 파악하는데 3분을 썼고, 그래도 몰라서 해설을 읽었다. 하지만 이문장이 틀리지 않았다는 불친절한 해설만 있을 뿐이었다. 불복신청이 가능하다는 걸 말하는 건가? 도대체 이문장에 방점은 어디에 있는 거야? 나는 법을 오래 공부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준비하는 시험을 공부해 본 적은 없지만 이따위 문장들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할만한 친구에게. 그러자 그가 명쾌하게 우리말(?)로 해석을 해주었다. “불복신청은 팔다리에 하지 말고 대가리에 해라~이 말이야~” 법에서는 재조사를 결정하는 집단과 처분을 하는 집단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은데, 처분을 하는 ‘팔다리’가 아니라 결정을 내린 ‘대가리’에 따지라는 말이었다. 알고 보면 법규는 참 당연한 말을 어렵게 써놓는다. 물론 어렵게 느끼는 것도 다 내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자격증 공부는 작년에 낙방한 이후로 기한이 또 일 년 늘었다. 취미처럼 공부한 탓이다. 그러나 그 말인즉슨, 공부는 좋은 취미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영원히 이것을 취미 삼는다면 문제 있겠지만) 그것은 내 일상에서 에세이 쓰기와 제법 균형을 잘 이룬다. 나는 2주에 한 번씩 3천 자의 글을 작정해야 하는 연애칼럼 연재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한 달에 3~4개의 글을 써야 하는 글쓰기 모임을 진행한다. 재밌는, 그게 안되면 적어도 읽을 만한, 문장을 쓰려고 노트북을 펼치면, 내 안에 검열관이 쓰-윽 다가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렇게 써서 재미가 있겠니? 사람들이 읽겠니? 조회수가 나겠니?’ 놈은 지독하게 따져 묻는다. 그럴 땐 자격증 공부로 달려가서 차가운 문장들을 머리에 욱여넣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절차법은 꽤 읽어봤다고 정답률이 제법 올라서 성취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또 사람은 간사해서 단순 암기와 O, X풀이만 하다 보면, 스스로 흐릿해진다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땐 에세이로 달려가서 감정을 표현하고 나를 나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자격증 시험에 꼭 합격해서 차가운 법규의 문장들과 따뜻한 에세이를 섞어낸 책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아직 공부할 것이 태산인데 벌써 너무 꿈이 야무진가? 다짐과 열정만은 언제나 뜨겁다. 이제 또 한 편의 에세이가 완성됐으니, 나는 차갑게 공부를 하러 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시오패스를 아시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