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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Jun 28. 2023

나이 들면 답정너가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은 언제나 사실이고 진실이다

지난주 토요일 드디어 내가 준비하는 국가고시 2차 시험이 있었다. 올해 나는 기초강의만 겨우 들은 초짜 고시생이기 때문에 그저 참가에 의의를 두었다.


바나나 하나로 빈속을 채우고 부랴부랴 찾아간 시험장 입구에는 어디서 많이 봤던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인강 속에서 봤던, ‘준비가 아직 덜 되었어도 꼭 시험을 보러 가라’ 던 우리 학원 선생님들. 연예인 보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인사를 했는데, 그들도 나의 내적 반가움을 알까? 현장강의보다 인강 수험생이 월등히 많다고 하니까 아마 이런 상황은 아주 흔한 일일 것이다.


시험장에 들어가니 벌써 대부분의 응시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와는 달리 결전의 날을 맞이한 고시생들이 과반수일 것이다. 나보다 먼저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부러워서 그들의 책상엔 어떤 게 있는지 눈을 굴려 훔쳐보았다.


그러나 부러운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뽀송뽀송한 얼굴이었다. 내 앞자리와 옆자리의 여학생도, 대각선에 있는 남학생도 뽀송뽀송한 20대의 얼굴이었다. 시험을 보러 온 차림은 그들도 역시 운동복에 질끈 묶은 머리와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는데, 그 뽀송뽀송한 얼굴들이 하나같이 예뻐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어느새 나이를 먹어서 어린것들을 보면 견딜 수없이 예뻐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와는 열 살 혹은 그 이상 차이 날 수도 있는 그네들을 보면서 나는 여러모로 부러웠다.


1차 시험을 겨우 합격하고, 이런저런 정보를 인터넷에 검색해 봤던 적이 있다. 1차 준비 때는 일부러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다. 너무 많은 정보는 도전을 망설이게 만드는 역할을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1차 합격이 늦어졌는지도..) 그러나 2차는 공부방법부터 인강추천등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때 네이버 지식인에 누군가 고심하며 올린 질문을 읽은 적이 있다. 삼십 대 중후반에 이 시험을 준비해도 되는 것인지 묻는 질문이었다. 나 대신 묻는 질문이었던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밑에 길게 달린 답변을 끌어올렸다. 관련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는 답변자는 ‘아쉽게도 모든 기업과 기관에는 20대를 원합니다’라는 야멸찬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제길. 안 본 눈이라도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이 나올 때까지 몇 번 더 검색을 했고, 결국 희망찬 답변도 몇 개 찾아 읽었다. 주변 친구 한두 명에게 연락을 해서 또 구태의연하게 그들의 입에서 아직 늦지 않았다는 뻔한 말을 끄집어냈다. 마지막으로 우리 언니와 함께 나이와 비례하는 의지를 가지고 꼭 합격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맥주 한캔을 했다.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어차피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나는 답정너가 되기로 한다. 인생의 노선을 바꿔야 할 때마다 늦어버린 시기 탓만 할 텐가. 우리 엄마는 오십에 첫 직장을 가졌다. 우리 아빠는 일흔에 처음 택시 핸들을 잡았다. 늦지 않았다. 중요한건 더 늦지않게 합격하는 것.


그 뽀송뽀송 이십대들은 시험에 합격했을까? 그들은 모르겠지. 본인들이 너무 어리고 예쁘고 시간도 많은 부자라는 걸.

후.. 합격하면 피부과부터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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