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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한 Jul 12. 2023

암기도 감정의 영역

애들아, 선생님도 암기 힘들다.

2차 공부는 모든 것이 암기다.

특히나 세상의 모든 물품에 숫자를 매기는 악질적인과목(관세율표)을 배울 때, 나는 이것이 철저히 뇌의 용량을 시험하는 일이라는 것을 매번 새로이 느끼게 된다.


그 과목의 선생님이 강의 초반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암기도 감정의 영역이라고 하지요?”

그것은 단박에 중학교 시절 나의 영어 성적을 떠올리게 했다. 교단에 서서 나를 날카롭게 째려보던 영어 선생님을 미워했던 나, 그리고 그 학기 90점대에서 60점대로 곤두박질쳤던 내 영어성적. 비단 미워하는 감정 때문만이었겠냐만은 당시 감정이 좋지 않은 과목은 더 멀리 재쳐두었을 것이 아주 분명했다.


대치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자주 듣는 문장들 중 하나는 ‘다 외웠는데 까먹었어요’라는 문장이다. 노력‘은’ 했다는 깜찍한 변명이지만, 매번 듣는 그 씨알도 안 먹히는 변명은 정말이지 전혀 깜찍하지 않다.

”야, 시험 보기 전에는 까먹지 말았어야지 “

나는 냉정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혹시

저 녀석이 나에게 감정이 안 좋아서?

그래서 암기가 잘 안 되는 것은 아닐까?


‘숨결이 바람이 될 때’라는 에세이의 작가는 치명적인 뇌손상을 치료하는 의사였다. 그는 폐암말기 판정을 받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의사에서 환자로 입장이 바뀌고 나서야 치료의 의미에 대해 더 깊게 깨닫게 된다. 그것에 비유를 하자면 너무 과장된 걸까? 나는 다시 학생이 되고 나서야 더 좋은 암기법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선생님이 되었다.


오늘은 토플을 시작한 아이에게 어디선가 읽었던 문장을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00아, 사람은 평균적으로 7번을 망각하고 나서야 8번째 비로소 평생 그것을 기억한다고 해.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짜증 나겠지만 자꾸만 반복을 해야 하는 거지. “


아이는 그것이 꽤나 그럴듯한 얘기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웠던 단어가 금방 휘발된 것이 좀 덜 억울하다고 느꼈을까?

아니, 무엇보다 숙제를 잔뜩 내주는 내가 좀 덜 밉다고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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