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사진 말고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휴가 기념으로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에 사진도 두 장이나 올렸다. 얼마간 공부하는 척하느라 조용히 눈팅만 하고 있었는데, 간만에 올리려니 사진 선택이 더 신중해진다.
‘우리 가족 생애 첫 애견펜션 방문’
몇 명의 친구들이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고시준비한다면서 무슨 휴가냐는 소리를 듣기 딱 알맞지만, 내 나이와 부모님의 나이 그리고 우리 집 개의 나이가 나란히 많아지는 것을 생각하면, 행복을 미루는 일에 조급증이 난다.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필라테스 강사가 휴가를 어디로 다녀왔냐고 물었다.
“그.. 단양이요”
“오 베트남 다녀오셨구나~”
그 뒤로 대화가 이어질 시간이 없어서 나는 그냥 그대로 오해하게 두었다.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은 다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발리의 멋진 바닷가, 홍콩의 유명 맛집, 스위스의 장엄한 산맥을, 사람들은 찍고 또는 함께 찍혀서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에 전시를 했다.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해외로 여행을 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양이 다낭처럼 들리는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나도 성실히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를 채우던 사람이었다. 작년에만 해도 여름엔 멀리 동유럽을 다녀와서, 여행지마다 공유할 사진을 몇 개만 솎아내는데 한참이 걸렸다. 여행뿐만이 아니다. 나는 소소한 일상도 제법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을 즐겼었다. 특히 맛집 요리, 유명 전시, 오늘운동완성!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요새는 인스타그램에 내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다. #고시스타그램 #공부스타그램 처럼 공부하는 일상을 올리며 꾸준함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용감하고 야무진 부류에도 속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또 준비하는 모습을 내보이기가 창피하다. 안 좋은 결과가 이어져서 우스워지는 것도 두렵다.
대학시절에 혼자 로마를 여행한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워킹투어를 신청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사진으로만 보던 장소들을 구경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가이드의 설명은 미켈란젤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의 청으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장식하게 되었는데, 이때 미켈란젤로는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그가 작업을 하는 동안 아무도 그곳에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천장의 진행상황이 몹시 궁금했던 율리우스는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몰래 현장을 찾아가는데, 조심성이 좀 떨어졌는지 단박에 미켈란젤로에게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자존심이 짱 쎈 미켈란젤로는 그날로 천장작업을 관두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버려서, 율리우스 2세가 그를 달래 다시 데려오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는 천부적인 위대한 재능을 갖고도,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중간 과정은 꽁꽁 숨겨두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이놈의 자존심!) 하물며 나는 이 과정의 결과물이 천지창조가 될지, 실패작이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몇 년간 쓰던 버릇 탓에 요즘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공유하고픈 욕구가 이따금 생긴다. 그래서 가끔씩 브런치에 짧게 고시생일기를 쓰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말고 브런치에 쓰고 싶은 글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아마 인스타그램에는 보이는 것이 주된 소재이고, 브런치에는 사진보다는 마음을 담아 적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브런치에는 멋지고 화려한 사진을 기대하고 오는 독자들은 없다. 진심을 담은 글, 어설프지만 솔직한 글. 나는 인스타그램 말고 브런치에 쓰고 싶은 글이 있다.
시간이 되면 또 공유해야겠다.
나의 고시공부, 어설픈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