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픔, 나의 슬픔
설이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시험이 반년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병명은 이첨판 폐쇄부전증으로 인한 심장비대증. 소형견에게는 흔한 유전병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병치레를 하는 것은 노견에게 당연한 수순 같았다. 설이가 뽀얗게 눈 쌓인 날 우리 집에 온 지도 햇수로 13년이 넘었다. 개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우리 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식구는 설이였다. 3월에 찍은 엑스레이사진 속의 설이 심장은 정상사이즈보다 조금 커져서 설이의 기도를 눌렀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숨은 가쁘게 쉬었다. 3.3킬로의 몸이 위태로워서 나는 설이를 힘껏 끌어안지도 못했다.
어느 날은 간질발작이 생겼다. 집에 온 나를 무척 반가워하다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괴롭게 울부짖으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증상은 짧고 격렬했다. 병원에서는 심장약에 추가로 신경계약을 처방해 주었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설이야 진정해. 조금만 반가워해 조금만, 내가 설이에게 부탁할 때마다, 엄마는 그 반가운 마음을 어떻게 말리겠냐고 한숨 섞어 말했다. 발작은 일주일에 서너 번, 어느 날은 하루에 두 번이나 발생하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크게 오열했으나 모순적이게도 설이의 증상이 나빠지고 잦아질수록 나는 울지도 않고 설이를 안아주었다. 대신에 뜬금없는 때와 장소에서 설이의 죽음을 생각하고 자주 눈물을 찍어냈다.
그리고 지난달, 설이의 배에 복수가 찼다. 깡마른 팔다리에 배만 부풀어 올라서 배가 유난히 시퍼렇게 보였다. 설이는 주사를 맞고 이뇨제를 처방받았다. 의사는 한 달 단위로 주던 설이의 약을 3일 단위로 지어주었다. 그것이 우리의 시간을 3일 이상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진료내내 연신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설이의 죽음을 언급하는 가족들에게 예민하게 화내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소리 내 울 때마다 설이는 내 눈치를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며칠이 지나고는 설이의 배에 지방종이 잡혔다. 순환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라고 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면 복수가 줄어드는 듯했으나, 배가 여전히 부풀어서 핏줄이 퍼렇게 보였다. 식탐이 사라지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개들은 죽기 전에 식욕이 없다고들 그랬다. 설이는 바닥에 몸을 뉘어 얕고 가쁜 숨을 쉬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설이의 숨이 끊어질까 봐 나는 침대에 누웠다가도 자꾸만 일어나서 설이의 숨통이 오르내리는 것을 확인했다.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하고 늘어진 설이를 보고 나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울었다. 설이는 내가 밥그릇을 코앞에 놓고 꺽꺽 소리를 내고 울자, 사료를 먹어주었다. 새벽 두 시에 설이가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그러던 지난주, 설이의 지방종이 사라졌다. 이틀 간격으로 병원에서 이뇨제 주사를 맞고 오자 복수도 많이 빠져 보였다. 체중도 전처럼 돌아왔다. 한순간 늙어버리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는 안 좋은 신호들이 거의 사라졌다. 이제 한시름 놓은 건가? 건강하지는 않지만 설이는 잘 살아있다. 내 소원대로 턱밑에 온 죽음을 힘껏 밀어낸 것 같아서 설이에게 너무 고마웠다.
늙고 아픈 존재에 대한 슬픔은 간단치가 않다. 스스로 잘 아는 줄 알았던 필멸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슬프다. 고시공부로 생계가 빠듯한 와중에 매달 개에게 들어가는 병원비가 슬프다. 사료를 물에 불리거나 제때 약을 먹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슬프다. 떠난 뒤에 몰려올 그리움이 슬프다. 나는 설이가 아프다는 사실에만 온전히 슬퍼하지 못해서 슬프다. 나의 슬픔이 너의 아픔보다 우선시되는 것에 버거운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사랑하고 늙고 아픈 존재에 대한 슬픔은 정말 간단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