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도서관의 정문은 9시에 열었다. 일찍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맞는 자리를 선점하고자 길게 줄을 서곤 했다. 내 마음에 맞는 자리는 그리 귀하지 않아서 나는 주로 벤치에 앉아있다가 9시 정각이 되면 긴 줄의 꼬리에 붙어 한가하게 도서관에 입장했다. 열린 문 안쪽에서는 도서관장이 줄지어 들어오는 방문객들에게 한 명씩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용료도 없이 쾌적한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하는데 도서관장의 깍듯한 인사까지 받으니 어쩔 땐 황송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도서관 후문은 정문과 달리 9시 15분에 개방을 했다. 후문은 넓은 공원과 연결되어 있었고, 공원에서는 이른 아침에 파크골프 경기가 종종 벌어지곤 했다. 파크골프에 참여하는 인원은 전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었다. 어느 날은 9시 10분 즈음에 후문을 지나서 도서관 정문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파크골프차림(하나같이 팔토시를 하고 허리전대를 착용하고 있다)의 할머니 두 분이 후문을 흔들고 있었다. 9시 15분에 개방한다는 안내문은 안중에도 없이 유리문을 힘주어 두어 차례나 더 흔들었다.
“그 문은 9시 15분에 열어요”
내가 할머니 두 분에게 말하자,
“아~ 그래요? 나는 우리 노인내들이 화장실 쓰는 거 꼴배기 싫어서 잠가둔 줄 알았네”
그중 한 할머니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 공원이나 도서관이나 시민들을 위해 개방된 공간이고, 공원 화장실이 따로 있긴 하지만, 공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도서관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그 말은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끔 비합리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오해하는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문자메시지로 받은 무료쿠폰을 쉽게 다시 찾지 못할 때, 구입처에서 악의적으로 본인의 문자를 지워버렸다고 분노했던 일(엄마의 휴대폰을 해킹해서 수신함의 문자를 지웠다는 말인가?)이나, 증권사에서 받아가는 수수료에 대해 엄마를 속이고 직원이 횡령했다고 억울해했던 일(수수료에 대한 고지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같은 것 말이다.
나이가 들고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느껴지면, 오해가 쉽게 생기는지도 모른다. 친절하게 적어둔 안내문은 이미 침침해진 눈에 쉽게 들어오지도 않을 테니까. 나는 자주 그 오해가 답답해서 엄마에게 무안을 주기도 했다. 어쩔 땐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엄마의 오해는 다 말도 안 된다고 잘난 척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선선히 잘 몰랐다고 히히 웃었다. 내가 엄마에게 후문에서 만난 그 할머니도 엄마랑 비슷하게 이상한 오해를 했다고 말하자 엄마는 말했다.
“으응 근데 나이 들면 다들 젊은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 싫어한다고 생각해”
그 말은 좀 슬펐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내가 엄마를 답답해하며 잘난 척을 할 때, 엄마라고 아무렴 아무렇지 않았을까. 자꾸만 도움을 받아야지 이해되고 해결되는 상황에서 잘난 딸년 눈치가 얼마나 보였을까. 우리 집에서 나부터가 나이 든 사람들의 오해를 부추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며칠 전 언니와 엄마가 부산에 여행을 다녀왔다. 언니는 엄마가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도 해본 사람이라며 아주 용감하다고 칭찬을 했다. 언니는 드라이브스루 이용이 어색하다며 주차하고 커피를 주문하려 했는데, 엄마가 이런 것도 자꾸 해봐야 한다며 아빠랑 벌써 드라이브스루는 마스터했다고 말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지만 용기있게 차를 몰고 들어가 주문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다부진 표정으로 모든지 자꾸 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도전정신이 귀여워 웃음이 난다.
엄마의 도전이 계속되어야한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부터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응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