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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이 싹 도는 재충전의 시간

시험이 끝나고 난 뒤

by 미쓰한

시험이 끝나면 초등학생처럼 놀이공원에 가고 싶었다. 갑갑하게 이어진 이 터널이 끝나면 도파민이 싹 도는 놀이기구를 마음껏 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동창 한 명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어려운 국가시험을 치렀는데, 시험 끝나고 만난 그 친구가 갑자기 롯데월드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마흔 가까이에 아들딸 없이 순전히 놀이기구를 위해 롯데월드에 가겠다는 마음을 갖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완전히 초등학생이 돼서 친구 손을 잡고 거의 소리를 질렀다. 함께 타게 될 놀이기구에 기뻤다기보다는, 비슷한 터널 속에서 둘 다 빠져나왔다는 동질감에 가슴이 벅차서. ”나는 내 삶을 열심히 이끌어가는데 지쳤어. 누가 나를 쥐고 막 흔들어줬으면 좋겠어 “ 친구는 소설책에 나올법한 비운은 여주인공처럼 비장하게 말했다. 이번 달, 롯데월드에 가야겠다고.


주말 오후 롯데월드는 붐볐다. 긴 줄을 서서 네다섯 개의 놀이기구를 타고 지친 표정으로 퍼레이드를 봤다. 바이킹에 올라서 소리 지르는 순간에는 즐거웠으나 대체로 피로한 하루였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반짝이는 회전목마를 배경으로 연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봐도 선뜻 멋진 사진을 남길 욕심이 나질 않았다. 체력은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다. 우리 집은 왜 잠실이 아닌 걸까. 그랬다면 집값을 포함해서 여러모로 좋았을 텐데. 지친 몸을 이끌고 집까지 가는 길에 생각했다. 지금 내 나이에 마지막 체력으로 아들딸을 데려왔어야 하는 건데, 앞으로는 더 힘들어서 못 오는 거 아닐까? 아니 그보다 당장 내일 출근 할 수 있을까?


시험이 끝나고 또 하고 싶었던 것들을 나열하자면 대체로 다 비슷하다. 도파민이 싹 돌았다가 이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지쳐버리는 것들. 좋아하는 스페인 맥주를 양껏 사다가 기름진 음식을 곁들여 과음을 한다던지,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시리즈를 새벽까지 몰아보는 것과 같은 일들 말이다. 그런 것들로 방전된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왜냐면 하고 싶었고 미뤄두었던 일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누군가 ‘시험 끝나고 잘 쉬었어?’라고 물으면 숙취가 남은 얼굴로 애매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고시 공부를 하던 때에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끝없는 긴장감 속에서도 어떻게 다시 일어설 힘을 마련할 것인가였다. 주변 사람들은 힘들면 쉬라고 조언했지만, 막상 나는 ‘쉬는 법’에 서툴렀다. 매주 토요일마다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마라톤 같은 모의고사를 치르고 나면, 재충전을 한답시고 맥주를 마시며 숏츠를 주구장창봤다. 그리고서 일요일에는 늦잠도 못 자고 7시에 학원일을 위해 출근을 했다. 그런 주말이 반복될 때는 아주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위 체력관리로 어떻게 완주를 꿈꾼단 말인가. 그때 나는 단정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재충전을 위해서는 절제가 있는 단정한 주말이 도움이 된다. 충분히 자는 것이 1순위고, 규칙적인 운동이나 다음 한 주를 위해 방을 정돈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단정한 습관들은 무너진 마음과 몸을 다시 세워주는 진짜 재충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시험이 끝난 후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새벽까지 술을 먹거나 하던 일을 다 버리고 바다를 보러 가는 일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충전의 핵심이라기보다는 단정한 생활을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허락되는 작은 여유일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잘난 척하며 떠든 말들을 지금 내가 잘 지키고 있냐고? 나는 또 숙취가 남은 얼굴로 애매한 표정을 지어본다. 내가 꽤나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라… 그래도 다음 주에 쓸 체력까지 끌어와서 놀이공원에 달려가거나 진탕 술을 마시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 언제나 실천이 어렵지, 나 이제 완전히 재충전의 의미를 알았다니까?! 이번 주도 정말 그 의미대로 단정하게 살아보리라 다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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