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예전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대학 친구들과 제주도 졸업여행 때 찍었던 사진을 발견했다. 갓 피어난 복사꽃처럼 싱그러운 얼굴에, 연분홍 니트 스웨터를 입은 J가, 제주도 억새 밭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J가 오늘 하늘나라로 떠났어.”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2호선 지하철 안에서 A의 전화를 받았다. 때마침 열차가 정지한 역에 무작정 내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지하철 역 벤치에 앉아서 A와 한참을 통화했다. 놀라고 황망했지만, 어쩐지 눈물이 쉬이 나지 않았다. 서른을 일 년 앞둔 스물아홉, 여름이었다.
우리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 입학한 동갑내기였다. 입학할 때 가나다 이름 순서대로 학번이 주어졌고, J와 나는 앞뒤 번호였다. J의 첫인상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학번 순서대로 자리가 지정된 수업에서 매번 옆자리에 앉았기에 금방 친해졌던 것 같다.
대학 1학년 시절, 지긋지긋했던 입시 공부에서 막 해방된 나는 학과 공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놀았다. 놀자고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다녔고, 다양한 모임에 나가서 어울리느라 같은 학과 동기들은 수업 때만 잠깐씩 만나는 존재였다. 그렇게 노는 데 집중하느라 수업을 대충 흘려듣곤 했던 내게 J는 정성껏 정리해서 필기한 강의 노트를 빌려주고 다음 수업 진도까지 친절히 알려주는 착하고 다정한 친구였다.
2학년에 올라가서 정신 차리고 학과 공부에 집중하려고 보니, 전공 수업은 재미도 없었고 내 적성에 맞지 않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방황이 시작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날이 어둡게 느껴졌다. 교대나 약대를 가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내가 가고 싶다고 주장해서 건축학과를 들어갔던 터라 부모님께 말도 못 한 채 고민만 깊어졌다. 그런 나와 달리, J는 착실하게 수업을 잘 따라갔고 좋은 성적을 받으며 대학 생활에 잘 적응했으며 교수들의 예쁨을 받았다. 때로는 나에게 자신의 취향이나 의견이 옳다며 면박을 주곤 했다. J는 꽤나 얄미운 친구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졸업할 때가 다가오자 나라에 경제 위기가 닥쳤고, 취업이 어려워졌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J는 교수 추천으로 대형 설계 사무소에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섯 살 연상의 남자와 연애를 해서 대학 동기 중에 가장 먼저 결혼을 했다. 동기들 모임이라도 하면, 꼭 남편을 불러내서 자랑 아닌 자랑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행복한 신혼 생활을 시작한 J가 임신 소식을 알렸다. 나를 포함한 학과 동기들 대부분이 결혼은커녕, 직장조차 잡지 못한 상황에서 J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나 임신하고 나서, 왼쪽 무릎이 자꾸 아파.”
나를 만나러 온 J가 살짝 푸념하듯 말했다. 스물여섯, 우리 둘 모두 건강했고 젊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이 낳고 나서 검진을 받아보라고 말해줬고, 잊어버렸다. J가 아이를 출산할 때쯤 나는 대기업 건설회사에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고, 신입사원 연수 교육을 받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조직 생활 속에서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기나 긴 방황 끝에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회사에 입사해서 내 손으로 돈을 벌게 되어 한숨 돌린 기분이었다.
J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뒤, 곧이어 아프다고 했던 왼쪽 무릎에 악성 종양을 발견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의사는 다리를 절단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권유했다지만,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의 젊은 여성에게는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래서, 종양만 걷어내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고 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들었다.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바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기에, 시간을 내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이상하게도 어두운 집안, 항암 치료를 받느라 짧아진 머리를 한 J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불편했다. J는 부서질 듯 가녀린 모습으로 밝게 웃으며 나를 맞이해줬고, 갓난아기인 딸의 배를 간질이며 즐거워했다. 결혼할 때 찍은 사진첩 속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자랑하기도 했다. 새로운 직장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던 내게, J는 행복했던 과거를 얘기했다. 그날이, J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다.
계속된 항암 치료에도 불구하고, 전신에 암세포가 퍼져 나가 폐에 전이가 되어, 결국 J는 폐암을 진단받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님과 함께 오랫동안 살고 싶다던 J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가서 J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보고서야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함께 손을 맞잡고 한참 동안 오열을 한 뒤, 겨우 마음을 수습하고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내가 힘들 때 손 내밀어 줬던 친구의 아픔을 더 살뜰히 보듬어 주지 못했던 게 미안했고, 후회와 죄책감을 느꼈다.
사진을 스캔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가위로 잘게 잘라서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 J에게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친구야. 우리, 나중에 만나자. 그때, 못다 한 이야기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