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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아 Nov 01. 2022

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

나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전화기 너머 들려온 ‘작가’라는 호칭에 얼어붙어 있던 마음 한 구석이 묘한 떨림과 함께 사르르 녹아내렸다. 첫 웹소설 습작을 투고했던 출판사 담당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나는 재작년에 직장을 그만뒀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대기업 건설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해서 15년 넘게 근무한 뒤였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결정을 내린 뒤,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을 원점에서 재검토해보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며,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생각했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고 잘했던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난생처음 부모님과 떨어져서 잤던 여덟 살 무렵이었다. 어두운 방에 혼자 누워 잠이 오지 않아 무서울 때면, 나는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숲 속에서 길 잃은 왕자님을 만나는 상상, 솜씨 좋은 요리사가 되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상상, 멋진 친구들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는 상상을 하면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열 살 무렵에는 학교 숙제로 ‘하얀 지우개’와 ‘검은 지우개’를 주인공으로 한 짧은 이야기를 써냈다가 예상 밖의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애쓰지 않고 놀이처럼 써낸 글이었기에 상을 받았을 때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사춘기 시절에는 소설책과 만화책을 보는 걸 좋아했고 마음이 힘들 때는 시를 쓰거나 공책 한 구석에 낙서를 그리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에게 내가 읽었던 재미난 소설을 들려줄 때, 친구들이 즐거워하면 스스로가 뿌듯해지곤 했다.


나는 이야기를 읽는 것,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다른 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왜 그와 관련된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열 살 무렵, 만화책이 너무 좋았던 내가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반응은 꽤 차갑고 쌀쌀맞았다. 상처받고 주눅이 들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작고 연약한 소망을 더 이상 입 밖에 내놓지 않았다. 대신, 학교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얻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어른들은 내가 ‘공부 잘하는 아이’ 일 때, 나를 인정하고 칭찬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 대학을 진학할 즈음에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번듯한 직업을 갖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갖게 되었다. 작가나 만화가는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처한 상황이 달라졌으니, 어린 시절 가슴 한편에 묻어둔 일을 시도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독서 모임에서 웹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를 통해 만화와 소설의 혼합체 같은 웹소설과 웹소설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인의 소개로 세종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웹소설 클래스를 수강하게 되었다. 그 후 몇 개월 동안의 노력 끝에, 첫 번째 웹소설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했다. 비록 계약은 불발되었지만, 소설을 창작하고 낯선 이로부터 처음 ‘작가’라고 불렸던 경험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특별했다.


여전히 ‘나는 작가입니다.’라고 남들 앞에 당당하게 내세울 만한 성과물은 없다. 내게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쓰기 재능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가지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나만이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선보일 용기와 꾸준함을 가져보기로 결심했다.


그 일이 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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