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훈 May 13. 2021

The Rule of Five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

내가 처음으로 추천사를 쓴 책이 메디치미디어에서 나왔다. 미국 연방대법원 소송의 다이나믹을 이처럼 생생하게 알려주는 책은 드물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연방대법원 사건을 소재로 썼지만 전문지식 없이도 쉽게 읽힌다. 미국식 스토리텔링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책이다.



2011년 조지타운 로스쿨 연수에 가서 미국법개론이던가,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이 얘기로 수업을 시작했다. "법률가로서 최고의 직업은 연방대법관이다. 1년에 8개월만 일하고, 무엇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사건만 하면 된다."


맞다. 연방대법원은 심리하고 싶은 사건만 한다. 1년에 100건 남짓이다. 대법원에서 사건을 심리받는 것 자체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 그리고 대법원은 처음 등장한 이슈에 대한 판결을 하는 것을 꺼려한다. 이미 법적으로 논의도 많이 되고 하급심 판결도 엇갈리고 그럴 때 나타나서 '에헴~'하고 최종 판정을 내리는 것을 즐기는 분들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 이 책에서 다루는 Massachusetts v. EPA 사건이다. 연방환경청이 이산화탄소에 대한 규제 권한을 행사하는 길을 열어 환경소송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사건이다. 2007년 판결이지만 기후위기가 최대의 관심사인 지금 오히려 적실한 책이다(원서도 2020년 3월 출간). 그런데 이 사건은 기후위기 얘기를 하지 않고 기후위기 소송에서 이긴 사건, 환경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역사적인 환경소송 판결을 만들어낸 사건이다. 상고이유서를 쓴 변호사들조차 "상고이유서를 보면 이 사건이 지구온난화 관련 사건이라는 것을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출판사의 의뢰가 있었지만, 추천사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이 책의 원제는 'The Rule of Five'다. 무슨 얘기냐 하면, 연방대법원 소송에서 이기려면 대법관 5명을 설득해서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윌리엄 J. 브레넌 대법관(1956-1990 재직)은 매년 로클럭이 새로 들어오면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이 뭐냐고 질문을 했다. 그들은 평등원칙, 적법절차 등 여러 얘기를 하는데, 브레넌 대법관은 다 틀렸고 'Rule of Five'가 가장 중요하다고, 연방대법원에 오는 개별 사건에서 대법관 5명의 표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대법관들의 다이나믹 또한 탁월하게 그려낸다. 4:4로 의견이 갈린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스윙보트 1표를 얻기 위해 대법관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스윙보트 1표를 얻은 쪽이 마지막 판결문 서명할 때까지 이를 잡아두기 위해 판결이유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어떤 작업이 오가는지, 심지어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대법원 구두변론에서 어떤 식으로 변호인의 변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개입하는지 등등.


국문 번역본 제목은 '지구를 살린 위대한 판결'이지만, 기후위기와 환경에 대해 관심있는 분만 아니라, 연방대법원 소송에 관심있는 독자, 사회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기는 소송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강력 추천한다.


"환경주의자들이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뛰어난 환경 변호사가 꼭 가장 좋은 '환경운동가’인 것은 아니다. 가장 뛰어난 환경 변호사는 가장 뛰어난 ‘변호사’다.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은 환경운동가들이 반길 만한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발언은 의회 청문회나 정치 집회, 선거 자금 모금 집회 등에서는 적절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아니었다."



작가의 이전글 Notorious RBG 방한 특집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