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원하는 사법부를 만드는 방법
미국 법조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는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The Federalist Society)다. 약칭하여 'Fed Soc'이라 부른다.
보수 진영 연방대법관 6명 전원이 여기 멤버다. 트럼프는 아예 Fed Soc 추천인사만 연방법관으로 지명하겠다고 공약했고, 실제로 임기 4년 동안 지명한 연방항소법원 판사 54명 중 46명이 여기 출신이다. 한마디로 이 단체의 회원이거나 최소한 지지를 받지 않으면 공화당 정부에서 연방법관 되기는 어렵다. 우리법연구회, 민사판례연구회는 여기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다.
이 단체는 1982년 학생운동으로 시작했다. 얼 워렌 대법원장 시기(1953-1969)는 'Constitution Revolution'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리버럴 헌법 해석의 전성기를 열었고 Brown, Miranda, Loving 등 진보적 판결을 냈다. 그 뒤를 이은 워렌 버거 대법원장 시기(1969-1986)에도 Roe 판결 등이 나왔다. 로스쿨이 리버럴 법학자들로 넘쳐난 것은 물론이다.
Fed Soc은 예일, 하버드, 시카고 로스쿨의 보수적 학생들이 이런 흐름에 대항하여 레이건 시대에 시작한 반혁명 운동이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하고 후세에 영향력을 끼친 학생운동일 것이다. 안토닌 스칼리아, 로버트 보크, 테드 올슨 등 유명한 보수 법률가들이 초기 스폰서였고 빠르게 세를 확장했다. 물론 지금은 학생운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주류 기득권이 되었다.
이들은 헌법 해석에 관해 원전주의(originalism), 문언주의(textualism)를 내세웠다. 헌법은 죽은 문서이고 헌법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를 반영하여 그 문언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것. 시대 상황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리버럴 법률관과는 정반대의 움직임이다. 예컨대 낙태권은 여성의 프라이버시의 일종으로 헌법상 권리로 인정되는데, 헌법에는 프라이버시라는 말도 없고 제정 당시 그런 개념은 있지도 않았으니 (브랜다이스가 만들어낸 개념을) 헌법상 권리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운동의 영향력은 단순히 자기 편을 연방법원에 많이 임명했다는 점이 아니라 게임의 룰을 바꾸었다는 데 있다. 케이건 대법관은 (스칼리아 기념 강연에서 나온 발언이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는 모두 문언주의자(textualist)"라고 했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 출신으로 리버럴 법철학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Yes or No가 아닌 열린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으로 대리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브라이어 대법관도 변론에서 헌법의 문언을 따져묻게 되었다. 대법관들조차 남이 만든 경기장에서 뛰게 된 것이다.
1973년에 낙태를 여성의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Roe 판결이 2021년에 사실상 뒤집히게 된 데는 이런 스토리가 있다. Fed Soc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을 실행할 사람을 꾸준히 고위 공직에 밀어넣어 다수파가 되는 편이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