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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훈 Jan 02. 2022

대선 캠페인을 구한 연설

노무현 그리고 오바마의 사례

대선 후보가 자신에 대한 공세를 연설 한방으로 돌파한 사례는 단연 2002년 노무현의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미국 버전은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의 'A More Perfect Union' 연설. 연설 전문: https://www.npr.org/templates/story/story.php?storyId=88478467


당시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출석하던 흑인교회 목사이자 결혼 주례를 해주는 등 깊은 연이 있는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의 과격 발언이 보도되며 궁지에 몰렸다. '갓 블레스 아메리카가 아니라 갓 댐 아메리카다, 이놈들아' 같은 발언. 화약고 같은 인종 문제를 발화한 거라 캠페인 내부에서도 경선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최대 위기로 인식했다.


노무현처럼 한 마디로 화끈하게 제압한 것은 아니지만, 오바마는 이 연설로 정면 돌파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를 낙마 위기에서 구한 연설, 뉴요커는 오바마를 백악관으로 밀어올린 원동력이 된 연설이라 평가했다. 그렇기야 하겠냐만, 이거 극복 못 했으면 민주당 후보 지명은 어려웠을 것이고 당시 미국인 80% 이상이 연설의 일부라도 들어보았다니 엄청난 화제였던 것은 사실.


오바마 후보는 경선에서 지든 이기든 인종 문제에 관해 국민들 앞에서 한번은 분명히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위기에서 어려운 이슈를 직면하는 정치인의 모범답안과도 같고, 현대 미국 정치 최고의 연설로 손색이 없다. 헌법이 제정된 필라델피아의 National Constitution Center를 장소로 선택한 것도 완벽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 문제를 이 연설에서 제시했던 것처럼 정면으로 대응하고, 미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이걸 받아들였다면, 미국의 인종 문제가 지금같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다. 아쉬운 부분이다.


(1)


- 헌법 전문의 "We the people, in order to form a more perfect union..."을 인용하며 헌법의 이상과 구현된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고, 자신의 캠페인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오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논의를 시작.


- 케냐 이민자 2세로 태어나 백인 조부모가 키워준 가족사를 엮어 자기 같은 사람이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는 국뽕 주입 + 흑백 혼혈이기에 흑백이 공존하는 미국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본인이라는 것을 암시.


(2)


- 도입부를 끝내고 현안인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 문제로 바로 돌입해서, 맥락을 보긴 해야 하지만 어쨌든 잘못된 발언이라고 지적 .


- 개별 이슈에 대한 해명을 근본적 이슈인 인종차별 문제로 끌고 가서, 과거의 노예제와 인종차별의 유산은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쳐 지금 흑인들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이 되었으며 끝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 물론 백인들의 억하심정에 대해서도 일부 이해를 표명.


(3)


- 지금은 미국이 수십년째 갇혀있는 인종 문제의 교착상태를 해결해야 할 때라며 시선을 미래로 돌림. 흑인들에게는 흑인이기에 겪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걸 인종 문제로 한정하지 말고 미국 사회 전체의 문제, 더 높은 미국의 이상이라는 차원에서 제기하여 해결하자고 호소, 백인들에게는 인종차별의 유산 그리고 지금도 지속되는 인종차별이라는 현실을 인정할 것을 호소.


"라이트 목사의 오류는 인종 문제를 대놓고 얘기한 것 자체가 아닙니다. 미국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에 얽매여 있다는 점입니다. 인종 문제에 관해 진보가 없었던 것처럼 얘기하고, 자신의 교회 신도 중의 한 명이 지금 인종을 아우르고 빈부와 세대 차이를 뛰어넘는 지지자들을 모아 최고위 공직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그런 나라가 영원히 비극적 과거에 얽매일 수 밖에 없다는 숙명론을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 또한, 미국이 직면한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를 다루어야 할 선거에서 네거티브 자제를 호소. 백인 힐러리 클린턴이 당내 흑인 경쟁자 제압을 위해 흑백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본선에서 백인 표는 매케인에게 다 갈 것이다, 이런 선거공학적 얘기만 계속하면 미국은 다음 선거에도 그 다음 선거에도 그 따위 얘기만 하게 될 것임.


(4)


- 마지막으로 인종 문제를 과거로 묻어두지 않고  함께 직면해서 해결에 나서는 선택을 하자고 다시 한번 호소하고, 남부에서 자신의 선거운동에 참여한 젊은 백인 여성과 흑인 노인 자원봉사자의 일화로 마무리.


"물론 백인 여성과 흑인 노인이 서로를 인정한 그 짧은 순간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고, 실업자에게 직장을 구해 주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이 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분명 의미있는 시작이고, 이 나라가 함께 강해지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애국자들이 필라델피아에서 헌법에 서명한 때로부터 220년 동안 여러 세대가 깨달아 온 것처럼, 거기가 우리의 더 온전한 연합이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


물론 선거전에서 발목 잡는 이슈를 연설 한 방으로 잠재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실질이 받쳐줘야 하고, 성정은 매우 다르지만 공히 불세출의 연설가인 노무현, 오바마니까 가능한 거지.


연설 영상: https://youtu.be/zrp-v2tH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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