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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기엄금 Nov 11. 2023

복싱과 골프 사이

점점 주변에 골프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인스타 피드에는 골프 관련된 영상들이 늘어난다. 사무실에서는 골프가 안부인사, 스몰토크를 대신한다. 어느 골프장으로 예약을 했느니, 몇 타를 쳤느니, 싱글을 했느니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낯선 용어들과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소음들이 내 주변을 채운다. 자연스럽게 나는 소외된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억지로 대화에 참여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더욱 고립된다. 작은 섬이 된다.


7시 퇴근. 집에 오면 7시 반이 넘고, 아내와 간단하게 식사를 함께 하면 8시 반 정도, 설거지를 하거나 세탁기를 돌리거나 어지러워진 집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9시 반, 아내의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10시 반, 간단하게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씻으면 11시 반이 훌쩍 넘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장을 보거나 하다 보면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어가고.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언가를 배우거나 자기 계발을 위해 투자할 시간은 지극히 제한이 되는데, 그 말을 다시 정리하자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서두에 말했듯 당장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은 골프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지점장님이 좋아하시고 직장사람들과 원활한 관계를 위해 또 거래처 섭외를 나갈 때도 골프는 배워놓으면 무조건 도움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바로 복싱. 사나이의 로망. 상남자의 스포츠. 두 주먹으로 때릴 때만 때리고, 누가 더 강한지를 겨루는 이 보다 정직하고 남자의 피를 끓게 하는 운동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격렬하게 땀을 흘리고 나면 심신 모두가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체력이 방전되기는커녕 충전이 되는 기분이다.


골프와 복싱 사이에 고민하는 모습은 요즘말로 내가 처한 처지 '그 잡채'이다. 현실과 이상.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사춘기 중학생처럼 방황하는 내 모습이 우습지만 전혀 귀엽지 않다. 무엇이 우선순위이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남진아저씨는 둥지 노래에서 말했다. 현실일까 꿈일까, 사실일까 아닐까,  헷갈리며 서 있지 말라고. 그런데 내 나이 서른 하고도 세 살을 더한 나이에 아직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 이렇게 방황하고 혼란스러워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몇 달을 머릿속으로 고민만 하던 나는 결국 복싱체육관 등록을 했다. 누군가 무기력한 것보단 무모한 게 멋지다고 했던가. Just do it. 누가 머래도 내 인생. 그냥 내 식대로 부딪쳐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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